고난의 바다, 파도가 날카롭다.
그 뾰족한 가시밭길 너머에 십자가 하나
구원의 길은 쉽지 않다.
[우수상 수상소감] 사물들, 렌즈 통해 각자의 언어로 말 걸어
피사체를 발견하면 관찰하고 탐구하면서 본질을 찾아낸 다음 작가의 느낌이나 감상을 담아낼 때 비로소 한 장의 사진이 탄생합니다. 사진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피사체의 형상을 빌려 작가의 느낌을 담아 낸 하나의 세계이자 우주입니다. 그런 면에서 사진은 길지 않은 문장으로 시인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해내는 시와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손에 들린 도구가 카메라일 때에는 사진이, 펜일 때에는 시가 창조된다는 차이가 있을 뿐 대상을 바라보고 분석하고 해석하고 본질을 찾아내는 점에서 둘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면서 한 편의 시를 쓰듯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사물을 응시하면 그것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언어로 말을 걸어옵니다. 그들이 전하는 말을 나의 느낌으로 해석하고 기록해 온 사진 한 장 한 장은 그대로 시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대구신문의 2025신춘 디카시 모집 공고를 보고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함을 열었습니다. 사진들을 검색하다보니 지난해 가을 충남 당진의 천주교 신리성지를 찾았을 때 찍었던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신리성지는 구한 말 순교한 천주교인들을 기념하는 곳입니다.
너른 내포 들판을 바라보며 우뚝 서 있는 탑 꼭대기에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십자가가 홀로 서 있었습니다. 그 아래 잔디밭에는 고국 프랑스를 떠나 머나먼 미지의 땅 조선에서 순교한 성 위앵 루카 신부를 기념하는 작은 경당이 있습니다. 자세를 낮춰 경당의 뾰족한 지붕들과 멀리 뒤에 보이는 십자가를 겹치게 배치하니 날카로운 고난의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걸어가는 예수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인류 구원’이라는 위대한 사명을 위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과 조선의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순교한 성 위앵 루카 신부는 시대를 초월하여 같은 고통의 바다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구원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고난의 파도가 아무리 앞을 막아도 그것이 내게 주어진 사명이라면 그 길을 가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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