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1일, 신촌 연세대학교 농구장에서 양준석과 유기상(이상 24·창원 LG)을 만났다. 농구장 한쪽에서는 연세대 스포츠 매거진 ‘시스붐바’가 양준석 인터뷰 준비에 한창이었다. 유기상은 우연히 마주친 농구부 후배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프로리그 챔피언이 되어 모교에 돌아온 두 선수는 농구코트 위에서 여전히 앳된 20대 청춘이었다.
연세대 농구부의 백코트 듀오였던 유기상과 양준석은 바늘구멍 확률을 뚫고 프로리그에서 같은 팀으로 재회했다. LG 유니폼을 입은 그들은 “우리가 LG의 창단 첫 우승을 만들자”라고 다짐했다. 우승 반지를 나눠 끼고 지난 여정을 돌아본 유기상은 “챔피언의 길은 쉽지 않더라고요”라며 웃었다.
챔피언결정전 1차전부터 3연승을 달린 LG는 거짓말처럼 4차전부터 3경기를 내리 패했다. 스윕승을 코앞에 두고 부풀었던 기대는 ‘KBL 사상 최초의 리버스 스윕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유기상은 경기장을 가득 채웠던 LG 팬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4차전부터 저희 경기력이 박살나면서 팬분들이 갑자기 조용해지실 때가 있었는데 그 분위기에서 오는 압박과 죄송한 마음이 컸다”라고 말했다.

‘챔프전 새내기’ 양준석과 유기상에게 홈에서 펼쳐진 6차전은 가장 아프고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당시 LG는 전반전 내내 서울 SK에 끌려가다가 4쿼터에 극적인 역전에 성공했으나 경기 종료를 1분 30초 남기고 승리를 빼앗겼다.
양준석은 “6차전까지 갔을 땐 홈에서 이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해서 다 쏟아부었다”라고 말했다. 유기상도 “내일이 없다는 생각으로 40분을 뛰었기 때문에 7차전에서 몸이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컸다”라고 기억을 되짚었다.
모두가 지쳐버린 7차전, 경험치가 풍부한 SK를 상대로 LG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젊음이었다. 유기상은 “트레이너 형들이 항상 ‘너희는 젊어서 회복력이 진짜 남다르다’라고 하셨어서 챔프전이 장기전으로 가면 저희가 더 유리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라며 “체력과 패기로 붙어 보자는 마음가짐이었다”라고 말했다.
LG의 ‘젊은 패기’를 설파하던 유기상은 잠시 멈추더니 “사실 이것도 결과론이다, 우리가 우승했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유기상의 말처럼 시즌 초반 LG의 젊음은 오히려 약점으로 평가됐다. 주전급으로 영입한 베테랑 선수들이 부상으로 인해 경기를 제대로 뛰지 못했다. 2001년생 양준석과 유기상, 칼 타마요가 주전으로서 팀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LG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8연패까지 빠졌다.

양준석은 “지금은 웃으면서 좋은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다”라며 “감독님께서 주전 라인업에 큰 변화를 주셨는데 저희가 결과로 증명해내지 못하고 최악의 기록을 썼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양준석과 유기상이 말하는 LG는 ‘기세’가 있는 팀이다. 젊은 만큼 분위기를 잘 탄다. 이러한 특성은 양날의 검이었다. 처질 때 한없이 처지다가도 한 번 계기가 생기면 금세 가속도가 붙었다. 양준석이 “저희 팀은 선수 구성상 8연승을 할 수도, 8연패를 할 수도 있는 팀이다”라고 말한 이유다.
함께 긴 시간을 보내며 서로에 대한 믿음도 강해졌다. 양준석은 “아무도 유기상을 의심하지 않는다”라며 “기상이는 본인의 슛에 대한 확신이 있다. ‘들어갈 때까지 던진다’라는 마인드이기에 결국에는 잘 넣을 거다”라고 말했다. 유기상은 “코트에 올라가면 일단 ‘긴장하고 쏘든 안 하고 쏘든 똑같다’라는 생각으로 나에 대한 의심을 지우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조상현 LG 감독은 이번 시즌 양준석에게 ‘벤치를 보지 말고 네가 코트 위에서 소통하라’라고 말했다. 작전 지휘권을 일임한 것이다. 양준석은 “감독님께서 ‘이제 네가 하고 싶은 패턴이 있으면 나에게 의견을 묻지 말고 진행해라’라고 하시더라”라며 “감독님께 신뢰를 받는다는 생각에 뿌듯해졌다”라고 말했다.
두 선수에게 ‘LG의 농구’를 물었다. ‘재미는 없을지언정 단단하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유기상은 “농구가 골을 넣는 스포츠라고는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5대5 수비 상황에서 골을 안 줄 자신이 있다”라며 “우리가 ‘안 주겠다’라고 마음먹으면 안 주는 거다”라고 말했다. 양준석은 “수비에 치중된 농구를 하다 보니 챔프전 하면서 저희끼리도 ‘우리 농구 진짜 재미없겠다’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라면서도 “다음 시즌엔 공격 면에서도 재미있는 농구를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축제는 끝났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유기상은 “우리는 우승 한 번에 만족할 선수들도, 우승 한 번에 만족할 구단도 아니다”라며 “더 큰 욕심을 가질 거라서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양준석은 “더 재미있는 농구를 하기 위해 달리겠다”라고 다짐했다. 미지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다시 농구화 끈을 꽉 묶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