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간 유관순을 제외한다면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교과서나 매체 등에서 접하기 어려웠다. 국가보훈부에서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여성 독립운동가도 전체 독립유공자 1만8000여명 중 약 3.6%(653명·2023년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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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정말로 독립운동에 나서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학교를 세우고, 만세를 부르고, 조직을 지원하는 등 자신이 선 다양한 장소에서 묵묵히 독립운동의 주체로 활동해왔다. 다만 그들의 역사는 상당수 기록되지 않아 당사자의 죽음과 함께 뒤안길에 묻혔을 뿐이다. 페미니스트 1세대 화가 윤석남이 그린 여성 독립운동가 12인 초상에 박현정이 글을 더한 <모성의 공동체: 여성, 독립, 운동가>는 희미한 자취를 따라 그들의 삶을 더듬어간다.

유관순이 갇혀 있던 서대문형무소의 ‘8호 감방’엔 김향화와 권애라, 심명철, 어윤희, 신관빈, 임명애가 함께 있었다. 이들은 체포된 지역도 제각각이었고 생활고로 15세에 기생이 된 이부터 학생까지 다양했다. 공통점이라면 3·1운동에 참여한 죄목으로 8호 감방에 수감되었다는 것뿐이다. 이곳에서 이들은 서로 노래를 가르치고 배우고, 갓난아기의 기저귀를 말려주고, 밥을 양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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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의 스승인 이애라는 제자와 마찬가지로 3·1운동에 가담했다가 스물여덟에 목숨을 잃었지만,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남아 있지 않다. 심훈의 <상록수>를 통해 이후에도 기억될 최용신 같은 인물도 있다. <상록수>는 농촌마을 사람들의 ‘종’이자 ‘여왕’이었던 그의 삶을 담고 있다. 손위 형제들이 다섯이나 죽고 태어난 딸에게 붙은 이름 ‘섭섭이’에서 ‘김미리사’로 또 ‘차미리사’로 달리 불려온 이는 근화학교(현 덕성학원)를 열고 기생이든, 소박맞은 여성이든 나이 든 여성이든 차별 없이 맞아들였다.
윤석남의 그림 속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결연한 시선으로 앞을 주시한다. 그들의 눈빛은 우리에게 ‘내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말을 거는 듯하다.
▼ 김지원기자 deepdeep@kh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