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국가다

2025-07-17

“법당 100채를 짓는 것보다 스님을 공부시키는 게 더욱 중요하다.” 교육이 모든 존재의 수준과 미래를 ‘절대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탄허 스님의 말이다. 후한 시기에 불교가 들어온 이래 당시 중국 사람들은 불교 자체의 사유 방식으로 불교를 이해하지 못하고 중국식 사유에 억지로 끼워 맞춰 이해하는 ‘격의불교(格義佛敎)’의 긴 세월을 보낸다. 불교가 중국의 사유 수준을 높여서 번영을 구가하게 한 것은 동진 시기 구마라습(鳩摩羅什)이라는 외국인 스님이 교육한 승조(僧肇)와 도생(道生)이 불교를 불교 자체의 사유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이다. 구마라습, 승조, 도생은 중국 불교의 꽃을 피우게 한 최초의 햇살이다. 이 세 스님이 없었으면, 중국 불교도 없다. 당시에 수많은 법당과 불상과 신도들이 있었지만, 중국 불교를 꽃 피운 것은 법당도 아니고 불상도 아니고 신도들도 아니었다. 제대로 교육받은 승조와 도생 두 천재였다. 구마라습의 ‘교육’이 없었다면, 중국에는 화엄종도 없고, 선종도 없고, 천태종도 없고, 주자학도 양명학도 없다.

발전 위한 혁신은 교육에서 시작

추격형 교육서 선도형 전환 절실

교육 본질 망각한 ‘서울대 열 개’

‘서울대보다 10배 좋은 대학’ 필요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은 교육을 통해서만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교육받아서 더 나아진 사람들로 채워지는 나라는 부강하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는 다 허약하다. 교육의 양이 국가의 양이고, 교육의 질이 국가의 질이다. 국가는 국방과 조세라는 두 기둥으로 우뚝 선다. 국가가 작동되고 운영될 때는 국방과 조세라는 두 기둥의 건강성 위에서 두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간다. 정치와 교육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육이 국가의 기초다”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매우 맞다. 나는 한발 더 나아가 “교육이 국가다”고 말한다. 국가 전부를 교육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정치판을 보면서 드는 가장 강력한 느낌은 “정치의 실패가 아니라 교육의 실패”라는 점이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병들지 않은 바에야 하나도 예외 없이 더 잘 살려는 열망으로 가득하다. 더 잘 살아나가는 과정을 발전이라고 하는데, 발전은 혁신의 다른 말일 뿐이다. 무엇이 혁신의 핵심인가? 바로 교육이다. 대한민국은 이승만 대통령부터 김대중 대통령 때까지 직선적인 발전을 이뤘다. 이때의 발전은 추격국가형이었고, 혁신도 추격국가형이었다. 추격국가형 혁신에 성공하였다면, 추격국가형 교육이 잘 뒷받침했었을 것이다. 문제는 추격국가형으로 가장 높은 단계에 오른 후, 선도국가형으로 도약해야 하는데, 선도국가형 교육으로 혁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도국가형 교육으로 혁신하지 않으면, 나라는 침체나 하락 혹은 추락의 지경으로 내몰릴 것이다. “허물을 벗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 정신들은 더 이상 정신이 아니다.”(니체) 더이상 정신이 아닌 정신들에게는 죽음밖에 다른 길이 없다. 허물을 벗지 못하고 죽는 뱀처럼.

최근 교육 관련 모 기사는 “한국, 칭화대처럼 할 수 있나”라는 제목을 달았다. 한국의 대학들이 중국 칭화대처럼 과감히 혁신하지 않아서 인재를 길러내는 일에도 더디고, 심지어 인재를 많이 뺏기고 있다는 내용이다. “교육이 국가의 기초”라는 명제를 받아들인다면, 이 말은 이렇게 바뀔 수 있다. “한국, 중국처럼 할 수 있나.” 이제 한국은 중국의 눈치를 살피고 중국을 따라 해야만 하는 처지로 내려앉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교육혁신을 중국만큼 하지 않은 탓이다.

“교육이 국가”라는 이치를 잘 모르면 “서울대 열 개 만들기” 같은 정책을 들고나온다. 평균적 중간 인재들로는 미래를 여는 혁신을 할 수 없다. 미래는 영재나 천재만 열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서울대 열 개”가 아니라 “서울대보다 10배 좋은 대학 하나”가 시급하다. 대한민국에 드는 쇠락과 정체의 흐름은 모두 쇠락과 정체에 들 수밖에 없는 교육으로만 일관해왔기 때문이다. 앞으로 치고 나가는 호전적이고 독립적이고 강한 인재보다는 주위의 눈치를 살피면서 옆 사람과 더불어 함께 하려는 평균적이고 따듯한 시민을 양성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결국 ‘나’가 아닌 ‘우리’를 만드는 데에만 열심이었다. 얼마나 무지하고 무모했으면,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지 않겠다고 대학 등록금을 동결하고, 서울대 열 개 만들어서 지역 균형 발전을 이루겠다고 하겠는가.

교육은 다른 정책을 이루는 데에 도구로 쓰일 정도의 것이 아니다. 교육을 그런 정책들을 완수할 인재를 기르는 것 이외의 다른 목표에 봉사하도록 하대하면 안 된다. 교육이 국가의 기초이자, 전부이기 때문이다. 극심한 사회분열, 정치 갈등, 포퓰리즘으로 대한민국은 쇠락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데, 이것은 모두 교육을 소홀히 해온 업보다. 천재를 원하면, 천재를 기르는 교육을 해야 한다. 다른 나라는 하는데, 우리는 왜 안 하는가. 왜 못하는가. 왜 강한 나라를 원하지 않는가. 혹시 국가가 무엇인지를 아직 몰라서 모두 ‘방안 퉁수’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최진석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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