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리세린 가격이 최근 급등하면서 한국과 중국 석유화학업계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에폭시 수지의 주원료인 에피클로로하이드린(ECH)을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중국은 글리세린, 한국은 프로필렌을 원료한다. 올해 글리세린과 프로필렌 가격이 교차하는 '골든 크로스'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국 측 기업의 반사 이익이 기대된다. 특히 ECH를 주력 사업으로 하는 롯데정밀화학(004000)은 계속됐던 관련 사업 적자를 털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31일 글로벌 화학·에너지 시장정보업체 ICIS에 따르면 정제 글리세린 가격(동북아시아 기준)은 지난해 1월 초 톤당 575달러에서 1년 만에 850달러로 67.6% 올랐다. 중국 내 ECH 생산 설비의 80% 이상은 글리세린을 원료로 쓴다. 정제 글리세린 가격 인상과 함께 동북아 지역 ECH 가격도 톤당 1130달러에서 1453달러로 상승했다.
반면 프로필렌 가격은 박스권을 지켰다. 한국은 ECH를 만드는 데 100% 프로필렌을 사용한다. 지난해 1월 초 톤당 820달러였던 프로필렌은 올해 초 855달러로 소폭 올랐다. 이에 따라 1년 전 245달러에 달했던 정제 글리세린과 프로필렌의 톤당 가격 차이는 5달러로 줄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진 글리세린 생산법이 가격 경쟁력 면에서 더 우위에 있다"면서도 "현재 추세라면 올해 안으로 두 원료의 가격 차가 역전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ECH 사업은 2022년 정제글리세린 가격이 프로필렌보다 현저히 저렴해지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정제글리세린은 프로필렌보다 200~300달러 저렴하게 가격대가 형성됐고 중국은 저가 ECH 제품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상기후와 EU의 환경 규제로 인해 상황이 달라졌다. 글리세린은 팜유를 바이오디젤로 제조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생산된다. 팜유는 주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에서 생산되는데 지난해 하반기 말레이반도에 내린 집중호우로 대규모 홍수가 발생해 생산량이 감소했다. 아울러 EU가 지난해 8월부터 중국산 바이오디젤에 최고 36.4%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면서 중국 내 바이오디젤과 글리세린 생산량이 함께 줄었다. 글리세린이 귀해지면서 중국 ECH 업체는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글리세린 품귀 및 가격 상승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세계 최대 팜유 생산국인 인도네시아 올해부터 바이오디젤에 들어가는 팜유 비율을 현행 35%에서 40%로 올리기로 했다. 이는 더욱 팜유 수급 부족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부터 발효되는 유럽연합(EU)의 삼림황폐화방지법(EUDR)의 영향도 클 것으로 분석된다. EUDR는 팜유와 고무, 목재 등 품목이 벌채된 토지에서 생산된 경우 해당 품목및 가공품의 EU 역대 수입·유통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동남아 지역에서 생산되는 일부 팜유는 해당 규제로 인해 EU 수출이 불가하다. EU가 전 세계 바이오디젤 소비량의 46.7%를 차지하는 만큼 바이오디젤 생산이 줄고 부산물인 글리세린 생산량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중국 ECH 업체로선 글리세린 수급을 물론 가격 방어도 힘들어질 수 있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 휘둘렸던 한국 ECH 사업은 다시 활기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선 롯데정밀화학과 한화솔루션(009830)이 ECH 제품을 생산한다. 롯데정밀화학은 연간 10만 톤, 한화솔루션은 2만5000톤의 생산 캐파(능력)를 가지고 있다. 롯데정밀화학은 현재 10개 분기 넘게 관련 사업 적자를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올해 안으로 한국 기업의 ECH 사업은 적자 구조를 탈피할 가능성이 크다"이라며 "ECH 가격이 상승 추세에 있기 때문에 마진 폭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