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연구소 조사 결과 발표
금융·설계·정부 수수료 등
텍사스보다 3.8배 더 비싸
인허가·공사 기간 2배 길어

가주의 렌트비 상승 이유 중 하나가 새 아파트를 짓는 데 드는 비용이 지나치게 비싸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비싼 건축비는 결국 '손익분기점 렌트비'를 높여 주택 건설의 경제적 실행 가능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싱크탱크 랜드(RAND) 연구소 산하 '주택.홈리스 센터'가 이달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텍사스에서 아파트 한 유닛을 짓는 데 평균 약 15만 달러가 드는 반면, 가주에서는 같은 아파트를 짓는 데 약 43만 달러가 든다. 건설비용 차이가 무려 2.8배에 달한다. 콜로라도는 중간 수준으로 평균 건축비는 약 24만 달러다.
공공 보조금을 받는 저소득층 아파트의 경우 비용 차이는 더 벌어졌다. 가주는 저소득층 아파트 건설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단위당 비용은 텍사스와 콜로라도보다 4배 이상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극심한 비용 차이에는 단일 요인이 아닌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하고 있다. 우선, 가주의 토지 비용은 텍사스 평균의 3배가 넘는다. 건물 건설 등에 드는 '하드 코스트(hard cost)'는 텍사스보다 2.2배, 금융.설계.정부 수수료 등 '소프트 코스트(soft cost)'는 무려 3.8배에 이른다.
가주에는 내진 설계 등 별도의 필수 비용이 있지만 안전 관련 비용이 전체 건축비 격차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6% 정도에 불과하다. 에너지 효율 관련 규제에서는 7%가량 비용 차이가 난다.
인건비가 비싼 것도 건설비 상승의 원인 중 하나지만 아파트 가격을 시장가격으로 했을 때 임금은 전체 비용 차이 중 6~10% 정도다. 소프트 코스트 중 가장 큰 부담은 설계와 엔지니어링 비용이다. 가주에서 이 비용은 텍사스보다 3배 높고, LA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 지역에서는 5배 이상 비싸다.
안전보다 큰 부담은 복잡한 행정 절차와 기준이다. 가주는 로컬 정부가 부과하는 개발 수수료 비중도 높아서 아파트 한 유닛당 평균 3만 달러에 달한다. 반면 텍사스는 800달러, 콜로라도는 1만2000달러 수준이다. 샌디에이고에서는 이 수수료가 전체 건축 비용의 평균 14%에 이른다.
가장 차이가 큰 것은 시간이다. 텍사스에서 민간 자금으로 짓는 아파트는 평균 2년이 조금 넘는 기간에 완공되지만 가주에서는 4년 이상 걸린다. 인허가 승인 절차에 걸리는 시간에서 2배, 실제 공사 기간에서 1.5배 이상 오래 걸린다. 공사 기간이 길어지면 토지 보유 비용과 장비.노동 유지 비용, 장기 대출 이자 등이 커진다.
연구는 3개 주 사이에 발생하는 차이는 대부분 주 정부와 로컬 정부의 정책적 결정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1970~1980년대의 '성장 둔화 정책(slow growth movement)'의 유산이 지금까지도 주택 공급을 제한하고 있다.
당시 가주는 급격한 인구 증가와 도시 확장으로 삶의 질과 환경, 지역 특성을 보존할 필요가 있었다. 도시가 커지면서 도로와 상하수도 등 인프라의 부담도 커졌다. 급격한 도시 확산을 막기 위해 각급 정부는 조닝 규제를 강화해 건물의 높이와 밀도를 엄격하게 제한하기 시작했다. 주택 신축도 제한에 무게를 두었다. 한 해 동안 지을 수 있는 신규 주택의 수를 제한하고 환경 영향 평가를 강화했으며 개발 승인에 주민 투표 도입, 도시 성장 경계선 설정 등의 방법으로 성장을 억제했다.
도시 확장 억제 정책은 공지 보존과 교통량 조절, 지역 특성 유지 면에서는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억제 정책에 계속되면서 신규 주택 공급 제한으로 집값과 임대료를 상승하면서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에까지 주거 불안정이 확산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또 기존 주민들이 한편으로는 개발을 반대하고 또 한편으로는 주택 문제 해결의 필요성은 인정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개발 제한이 낳은 또 다른 현상은 규제가 없는 더 멀리 떨어진 외곽 지역으로 개발이 점프하는 건너뛰기(leapfrog) 현상도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1970~1980년대 개발 속도를 늦추려는 정책은 삶의 질과 환경을 지키는 긍정적 효과를 거뒀지만 주택 공급 부족이 누적되면서 가격 급등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실제로 인구에 영향을 미쳤다. 2020년 이후 가주는 몇 년간 인구가 감소했으며, 주택 비용 부담으로 젊은 고소득층 인구가 타주로 유출되고 있다. 그 결과 가주는 역사상 처음으로 연방 하원의석을 하나 잃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금의 추세가 지속한다면 2030년까지 4~5석을 더 잃을 가능성도 있다.
가주에서 주택 부족과 집값 상승은 중산층의 생활까지 위협하는 수준이다. 최근 가주는 집값을 잡기 위해 조닝과 환경 규제를 완화하고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몇 년 사이 인기를 끌고 있는 뒤채(ADU) 활성화도 이런 노력의 하나다. 랜드 연구소의 조사 결과, 가주 집값에서 정책 비용이 여전히 텍사스나 콜로라도보다 훨씬 비싸다는 점이 드러났다. 가주에는 여전히 주택 건설의 느린 성장 관성이 남아있다. 가주 집값은 느린 성장 정책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 랜드 연구소 조사의 결과다.
안유회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