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다양한 맛으로 소비자 취향을 저격하는 이 문장은 유명 아이스크림 회사의 광고 문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인의 과일 식탁에는 이 말이 허용되지 않는다. 사과 ‘후지’, 배 ‘신고’, 단감 ‘부유’ 등 일본에서 육성된 품종이 과일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이 차지하고 있어서다.
특히 배는 ‘신고’ 재배비율이 지난해 기준 84.5%에 달해 소비자 대부분이 ‘신고’ 맛에 길들어 있다. 물론 ‘신고’가 가진 장점도 많다. 재배가 쉽고 제 숙기보다 조금 이르게 수확해도 어느 정도 단맛이 있으며, 조금 늦게 따도 그다지 큰 장해가 나타나지 않는다. 저장력도 길어 유통업자들도 선호한다.
그러나 이런 장점에 기대 너도나도 ‘신고’만 재배하다 보니 여러 문제점이 나타났다.
대표적인 것이 인공수분에 필요한 꽃가루문제다. ‘신고’는 자체 꽃가루가 없어 자연수정을 위해 주변에 꽃가루 공급용 나무를 심거나 따로 꽃가루를 구매해 인공수분을 해줘야 한다. 그런데 최근 국내 꽃가루 수요의 대부분을 공급하는 중국 꽃가루의 가격이 급등했다. 중국 내 과수 화상병이 발생한 데다 자국 소비가 늘어난 탓이다.
또한 단일 품종만을 심게 되면 봄철 개화기 저온피해를 보기 쉽고 무엇보다 소비자의 다양한 취향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농촌진흥청에서는 1969년 ‘장십랑’에 재래 배 ‘청실리’를 교배해 만든 ‘단배’를 필두로 현재까지 배 품종 40개를 육성했다. 국내 기술로 만든 배 품종은 맛·크기·색깔이 다양하고 과즙이 풍부하다. 얼마 전 한 업체에서는 우리 배 ‘설원’의 생김새를 따 일명 ‘슈렉배’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서 판매해 젊은층의 호응을 얻었다. 이 품종을 맛본 한 소비자는 당도가 높고 시원해 배 아이스크림을 먹는 듯하다는 댓글을 남겼다. ‘원황’ ‘슈퍼골드’ ‘화산’ ‘추황배’ ‘만황’ 등은 맛도 뛰어날 뿐 아니라 ‘신고’의 꽃가루 공급용 나무로도 안성맞춤이다.
‘신고’ 일색의 배 재배 이면에는 품종을 육성하고 농업정책을 입안하는 관련 기관의 책임이 적지 않다. 그간 맛있는 배를 재배해 신선농산물 수출로는 첫번째 손가락을 차지하도록 노력해준 1만3500여 배 재배농가에 당부드리고 싶다. 소비자에게 ‘골라 먹는 재미’를 안겨줄 수 있도록 다양한 국산 품종 재배에 관심을 가져주길 말이다.
홍성식 농진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