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터뷰] 한국 남성 첫 '발레 월드컵' 우승 박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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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재는 용암 같다. 이제 갓 16세 발레리노. 그의 마음은 무대를 향해 이글거린다. 지난 8일(현지시간) 세계적 발레 콩쿠르, 프리 드 로잔(Prix de Lausanne)에서 우승했다. 한국인 남성 발레 무용수로는 최초다. 2023년 5월의 박윤재는 조금 달랐다. 14세 유망주로 출전한 국내 콩쿠르에서 착지 후 중심이 무너졌다. 위기를 맞았으나 2년 뒤 한국 발레의 새 역사를 썼다.
지난 14일 서울예고 무용관 발레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제가 받은 상의 무게와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제 고2가 되는 그의 얼굴은 앳된 소년이지만, 말은 묵직했다.
로잔 콩쿠르는 전 세계 발레 꿈나무들의 등용문이다. 만 15~18세 학생만 참가할 수 있고, 심사 방식도 독특하다. 작품 경연만으로 심사하지 않고, 1주일 동안 학생들이 연습하는 장면부터 지도자들의 지적과 조언을 어떻게 반영하는지도 꼼꼼히 본다. 점프의 높이와 턴의 개수만 보는 게 아니라, 무용수로서의 성장 가능성과 인성까지 보겠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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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 국립발레단장도 로잔에서 입상하며 세계 무대에 데뷔했다. 한국인 발레리노에겐 운이 따르지 않던 대회에서 윤재군이 한을 풀었다. 한정호 무용 평론가는 "로잔 콩쿠르는 발레계의 유망주 월드컵"이라며 "세계 최고 발레 전문가들이 현재 기량뿐 아니라 자질과 잠재력을 평가하는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의미"라고 짚었다. 윤재군이 한국어로 말한 소감은 수만여 명이 접속한 유튜브로 세계에 생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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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고 출입문엔 "밤 10시 이후에도 연습을 하는 학생들은 징계 조치한다"는 문구가 붙어있다. 윤재군뿐 아니라 많은 학생이 연습을 치열하게 한다는 방증이다. 윤재군도 "길게는 12시간을 연속으로 연습했다"고 말했다.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실패에 답이 있다.
트라우마 무대, 정면으로 돌파하다
윤재군은 다섯 살 때 누나를 따라간 발레학원에서 바(barre)를 처음 잡았다. "발레가 그냥 좋았다"고 한다. 일찌감치 발레를 선택했다. 방과후에도 발레의 기본 동작 플리에(plié)부터 점프까지 연습을 거듭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하 한국예술영재교육원과 계원예중을 거쳐 서울예고에 입학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대학은? "해외를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유망주로 주목받던 그를 좌절에 빠뜨린 2년 전 실수를 물었다. 콩쿠르에서 '지젤' 의 알브레히트 솔로를 마친 뒤 큰 착지 실수를 했다.
머릿속이 하얘졌겠어요.
"멘털이 완전히 나갔어요. 그 뒤로 아예 턴을 하나도 제대로 못 돌았고 계속 쿵쿵거렸죠."
다음 날 어떤 생각을 했는지요.
"내 노력이 부족했나, 아니면 그냥 나라는 사람이 부족한 건가… 절망의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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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은 계속 했나요.
"매일 했죠. 그런데 안 좋은 생각이 꼬리를 물더라고요. 선생님께서 코렉션(corrections, 지적을 뜻하는 발레 용어)을 주셔도 '또 실수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만 들었어요."
그러다 문득 "그만둘 거면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방법은 연습, 또 연습. "마음이 힘드니 몸을 더 힘들게 하면 된다고, 고통은 고통으로 덮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2시간 동안 발레슈즈를 벗지 않았던 때가, 이때였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같은 콩쿠르에 나가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그 기억을 지워야 했고, 그러려면 다시 도전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은상을 받으며 트라우마를 타파했다. 윤재군은 "제가 저를 믿지 못했기 때문에 실수했던 거 같다"며 "나를 믿고 즐기면 된다고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솔직하다. "발레가 되게 좋기도 하고, 되게 싫기도 해요"라며 웃는다. 1~2분의 무대를 위해 매일 12시간씩 연습하는 건 괴롭다. "하지만 무대에서 환호를 받을 때, 반짝반짝하는 그 느낌이 너무...(잠시 침묵) 정말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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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잔에서 그의 본선 진출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수상 여부가 아니라, 어떤 상을 탈지가 궁금하다"는 말이 발레계에 돌았다. 그런데 그의 작품 선택이 의외였다. 콩쿠르에 나갈 땐 가장 잘하고, 잘 어울리는 작품을 고르게 마련이다. 박윤재는 달랐다.
키가 185㎝인 그는 으레 '백조의 호수' 중 지그프리트 왕자나 '잠자는 숲속의 미녀' 데지레 왕자 등을 춰왔다. 체격 조건도 재능이라는 발레에서 소수만 맡을 수 있는 역할이다. 그러나 윤재군은 다른 선택을 했다. 이미 잘하는 것이 아닌, 더 잘하고 싶은 것을 택한 것. 프랑스 혁명의 열정을 표현한 '파리의 불꽃' 작품이었다. 왕자 역할이 아닌 평민 혁명가다. 게다가 이 작품은 초반에 자기 키만큼 날아올라 양다리를 가위처럼 찢는 점프로 기선 제압을 해야 한다. 윤재군처럼 큰 키의 무용수는 대체로 피하는 작품이다.
왜 이 작품을 골랐나요.
"하고 싶다고 강하게 밀어붙였어요. 제가 고집이 좀 세거든요(웃음). '쟤는 또 왕자 하겠지'라는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싶어서요."
두려웠을 텐데요.
"저는 키가 커서 점프가 민첩하지 못하고 스피드도 떨어져요. 솔직히 겁도 났어요. 하지만 연습하면 된다고 생각했죠."
본선 무대에선 어땠나요.
"이상하게 하나도 안 떨렸어요. (웃으며) 신기한 게, 그 어떤 콩쿠르보다 안 떨렸어요. 최선을 다했으니 즐기자고 생각했거든요. 이 작품은 혁명의 승리를 온몸으로 표현해내야 하는데, '잘해내야만 해'라는 각오가 지나치면 캐릭터에 녹아드는 데도 문제였고요."
그의 서울예고 스승인 안윤희 발레과 교사는 "윤재는 노력과 감각 두 가지를 모두 갖췄다"며 "마음을 열고 새로운 것을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칭찬했다. 그의 서울예고 지도교사 리앙시후아이 전 유니버설발레단 무용수도 "윤재는 새로움을 빨아들이는 감수성이 풍부하면서 투지도 있다"고 말했다. 한정호 평론가는 "어린 나이에도 신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잘 알고 있고, 작품에 맞춰 체형의 장점을 돋보이게 하는 지적 이미지가 돋보였다"고 말했다.
내려놓고, 성장하다
로잔 현지에선 어땠나요.
"저를 내려놓고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던 과정이었어요. 사실 제가 고집이 셌던 것도, 제가 못하는 부분을 인정하기 싫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못하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건 힘들잖아요. 그런 고집을 로잔의 1주일을 겪으며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본선 무대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프가 있는데, 로잔 선생님이 '사선이 아닌 옆으로 간다고 생각하고 뛰어보렴'이라셨는데 바로 딱 되는 거예요. 전구에 불이 탁 들어오는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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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발레리노 첫 우승이란 의미도 크죠.
"로잔에 가기 전까지는 막연하게 피부색이나 신장, 이런 게 심사 기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 긴장했었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키가 크건 작건, 피부색이 어떻건 모두의 다양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문화가 감동적이었어요."
기자회견에서 허벅지가 두꺼운 게 콤플렉스라고 했는데요.
"'허벅지가 너무 두꺼워서 라인이 안 예쁘다'거나 '몸을 잘못 쓰기 때문에 근육이 과하게 붙는다'는 말도 들었거든요. 폼롤러로 근육을 다 없애려고 너무 세게 밀다가 피멍이 들기도 했어요."
발레는 발이 중요한데, 평발이라고요.
"평발이다 보니 쥐가 자주 나요. (발레의 기본 동작으로 발바닥을 써서 바닥을 밀어내는) '탕뒤(tendu)'부터 자주요."
그럼, 쉬나요?
"아뇨. 멈추면 다시 오니까요. 그냥 해요. 쥐가 안 풀릴 때도 있어요. 그럼 다리 전체에 통증이 번져요. 가끔 눈물이 날 정도로 아파요. 하지만 포기할 순 없어요. 포기하면 나아질 수 없잖아요."
원망스럽기도 했겠어요.
"그런데요, 이젠 제 발이 좋아요. 과자 중에 울퉁불퉁한 '치토스' 있잖아요? 저는 제 발을 '치토스 발'이라고 부르며 예뻐해 주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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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토스 발'은 그가 쥐가 나고 통증이 와도 참고 계속한 연습의 축적 결과다. 박윤재라는 잠재력은 앞으로 어떻게 폭발할까. 그는 "한 곳에 정착하기보다는 세계 각지를 다니며 많은 다양한 분들께 발레의 매력을 전하며 반짝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발레슈즈를 신고 발레 바를 잡으며 이렇게 말하고, 말할 것이다. "오늘도 잘 부탁한다. 흔들리지 말자." 그렇게 박윤재라는 용암은 활화산을 준비한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