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새론씨가 사망한 날 야간 당직을 했다. 관련 기사를 쓰기 위해 고인에 대해 악의적으로 보도된 기사들을 분석했다. 그런데 다음 날 친하게 지내던 타사 후배로부터 황당한 연락이 왔다. 페이스북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상한 얘기가 돌고 있다고. 알고 보니 기사에 첨부된 ‘악성 보도 목록’ 속 기사들을 모두 내가 쓴 것이라고 오해한 채 “고인을 생전에 실컷 조롱하다 사망하니 위선적으로 구는 기레기”라고 욕하는 가짜뉴스였다.
기사 본문을 한 번만 읽어봐도 속을 수가 없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이런 허위 정보가 퍼진 것은 우리 사회의 형편없는 디지털 문해력과 가짜뉴스에 취약한 현실을 새삼 드러낸다. 현재 온라인에서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이 언론사 웹사이트 접속은 말할 것도 없고, 포털 뉴스판에서 읽는 이들조차 급감하고 있는 추세와도 연결된 듯하다. 이번 일을 보면 기사 본문이나 링크 없이 악성 기사 제목 이미지만 따로 돌아다니고 있었던 탓이 컸다. 사람들은 그 이미지만을 보고, 누군지도 모를 이가 덧붙인 확인되지 않은 평가에 휩쓸렸다.

당시 쓴 분석 기사는 유명인에 대한 악성 보도 행태를 주로 지적했으나, 그 이면에는 이러한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며 부추긴 대중이 있다. 여기엔 사유의 과정이 없다. 모니터 뒤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거나, 주장의 신빙성이나 정당성을 따져본다거나 하는. 마음껏 비난할 대상을 찾아 먹잇감으로 누군가 던져주면 돌부터 던지고 보는 이들만 있을 뿐이다. 나아가 이제는 이런 내용을 지적한 기사마저 손쉽게 오독되어 비난당하는 기막힌 수준이 된 것이다.
‘가짜뉴스 면역력 제로’ 사회는 이렇게 명줄을 이어간다. 댓글폭력에 대한 책을 출간한 지 2년이 지났는데, 이번에 다시 맞닥뜨린 현실은 악화일로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사람 잡는 폭력성’까지 침투해버린 최악의 상황인데도 우리 사회는 근본적으로 무대책이다. 20대 초중반의 나이에 이 모든 폭격 한가운데 있어야 했던 김씨의 고통은 지금 얼마나 이해되고 있을까.
이번에 개인적으로 경험한 가짜뉴스 해프닝은 이 사실을 안 지 하루이틀 만에 일단락됐다. 댓글 관련 책을 쓰는 등 사이버 폭력에 목소리 내 온 기자 당사자이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잘못된 정보를 정정하는 글을 직접 써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부 비난 댓글이 남아 있긴 하지만 대부분 게시글은 삭제 처리됐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해프닝으로 끝나야 할 일이 그렇게 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 기준은 논란에 휘말린 사람이 얼마나 잘못했느냐와 같은 것이 아니다. 이는 표면적인 핑계에 불과하며, 잘못이 있다 해도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정도로 만들어선 안 된다. 이런 유의 공격은 냉철하게 시시비비를 가린 결과이기는커녕 그 사람에게 여론이 얼마나 등을 돌렸느냐에 따라 태세 전환되는 경향이 짙다. 반격하지 못할 것 같은 인물에게 더 무자비한 폭력이 날아들기도 한다.
이런 결과는 언론, 포털, SNS 같은 플랫폼과 디지털 시민성을 키우지 못한 대중의 합작품이다. 어느 한쪽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토록 고치기 힘든 게 아닌가 싶다.
정지혜 외교안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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