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8 서울, 극장도시의 탄생
박해남 지음
휴머니스트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는 88올림픽 성화가 지나갈 길목에서 좌판(노점) 단속이 벌어져 주인공 애순을 비롯한 상인들이 항의하는 장면이 있다. 드라마의 배경 제주가 그럴진대 실제 주무대인 서울은 오죽했을까. 올림픽 목전의 서울은 마치 장학사 방문을 앞둔 학교처럼 부산했다. 성화봉송로 주변의 담장 개량, 화단 조성은 물론 매달 20일 ‘질서의 날’에 사회정화위원회가 출동해 버스터미널과 관광지 등을 감시하고 청소했다. 친절하고 질서 있는 한국을 보여주자는 일념 덕에 서울올림픽은 성공적인 축제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사회학자인 저자의 눈에 당시 한국인들은 “가상의 외국인의 감시 하에 일상을 영위”한 것에 다름없다. 당시 군사정권은 일종의 연출자가 돼 외국인 눈에 그럴듯해 보이는 ‘올림픽 연극’을 기획하고 각자에 맡긴 배역을 훈련시켰다. 부랑아, 잡상인, 앵벌이, 전과자 등은 무대 밖으로 솎아내 각종 수용시설로 보냈다. 1981년 7156명이던 수용자 수는 1987년 1만5437명까지 증가했다. 마라톤 코스에서 거슬리는 달동네들은 일제히 재개발돼 아파트촌으로 바뀌었다.

부제가 ‘서울올림픽이 만든 88년 체제의 등장과 커튼콜’인 이 책은 이렇듯 우리 현대사를 ‘극장도시’라는 비판적 관점으로 돌아본다. 저자는 서울올림픽을 “권력을 독점한 군인들이 경제발전을 최우선하며 시행한 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여러 문제와 위기를 해소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한 메가 이벤트라고 본다. 1970년대 ‘근대화’에 이어 80년대 ‘선진화된 한국’이라는 상명하달식 과제는 올림픽이라는 스펙터클로 절정을 이뤘고 우리 안에 ‘88년 체제’를 내면화시켰다.
그간 제5공화국의 3S 정책 분석은 많았지만, 올림픽만 집요하게 파헤친 점이 돋보인다. 자칫 무산될 뻔한 올림픽 개최가 전두환과 일본 정계 만남 후 전격 재추진된 정황 등 ‘무대 비하인드’가 쏠쏠하다. 남은 질문은 일방적인 ‘88년 체제’를 어떻게 시민 간의 ‘사회계약’으로 전환할 것인가다. 부동산 가격 따라 ‘급지’를 촘촘히 구분하는 서울에서 심화되는 저출산 현상을 보며 우리가 놓치고 잃어버린 걸 되묻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