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법조] '집행 이슈까지 원스톱 해결' 싱가포르 국제상업법원

2025-03-17

소수주주권 침해에 지분 일괄매각 명령으로 퇴로 열어줘

해외에 투자하는 한국기업의 국제분쟁을 다루는 법률 전문가들에게 외국 관할권에서의 법적 보호는 중요한 고려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싱가포르를 국제중재의 중심지로 인식하고 있지만, 복잡한 국제 상업분쟁을 해결하는 또 다른 주요 포럼인 싱가포르 국제상업법원(Singapore International Commercial Court, 이하 'SICC')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Kiri v Senda 사건

최근 필자가 몸담고 있는 싱가포르 로펌 Allen & Gledhill에서 인도기업인 Kiri Industries Ltd를 대리해 승소한 케이스(Kiri Industries Ltd v Senda International Capital Ltd 사건)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면, SICC가 국제 상사분쟁을 해결하는 절차와 방식은 물론 집행 이슈까지 여러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를 소개하려고 한다.

SICC는 2015년 싱가포르 고등법원의 일부로 설립된 분쟁해결기관이다. '소송 절차를 포함한 중재(arbitration within litigation)'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중재의 유연성과 소송의 장점(항소 및 가처분과 같은 법적 구제책)을 결합한 제도라는 점을 강조한다. 상사 분야에서 전문성을 보유한 싱가포르와 국제적인 판사들로 구성된 법관단으로 재판부가 구성되며, 등록된 외국변호사의 변론도 허용된다.

1. 분쟁의 배경

본 사건은 2015년, Kiri가 DyStar Global Holdings(Singapore) Pte Ltd (이하 'DyStar')라는 합작 투자회사에서 다수의 지분을 보유한 Senda International Capital Ltd(이하 'Senda')를 상대로 소수주주권 침해(minority shareholder oppression) 청구를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Kiri는 인도에서 설립된 염료 전문 상장기업으로 DyStar의 37.57%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홍콩에 설립된 Senda는 중국 상장기업인 Zhejiang Longsheng Group Co Ltd(이하 'Longsheng') 의 투자 자회사로, DyStar의 62.43%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DyStar 그룹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으로, 37개의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유니클로, 언더아머, 아디다스 등 글로벌 브랜드를 고객으로 두고 있다.

2017년 본 사건의 국제적(international) 및 상업적(commercial) 성격을 고려하여 사건이 싱가포르 고등법원 일반부(General Division)에서 SICC로 이관되었다.

2. 주주권 침해 판결(2015–2019)

4년에 걸친 장기 소송 끝에 SICC는 2018년 7월 3일 Senda가 Kiri에 대해 주주권 침해 행위를 했다고 판결하였다. 이에 따라 Senda는 Kiri의 DyStar 지분을 판결일(2018년 7월 3일) 기준으로 평가하여 매입해야 한다는 처분판결(이하 '매입명령')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SICC는 Kiri와 Longsheng이 상장기업으로서 자회사 및 관계사에까지 투명한 거버넌스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3. Kiri 지분의 평가(2020–2023)

Kiri 지분의 평가를 놓고 치열한 법적 공방이 벌어졌다. 특히 소수 주주가 주주권 침해 소송을 통해 매입명령을 받을 경우, '시장성 결여 할인(Discount for Lack of Marketability)'이 적용되어야 하는가가 주요 논점이었다. 싱가포르 항소법원은 Senda의 '비난받을 만한 행위(reprehensible conduct)'를 고려하여 '시장성 결여 할인'을 배제하였으며, 2023년 3월 Kiri의 지분 가치를 미화 6억 380만 달러(한국돈 약 8,694억원)로 확정하였다.

4. 소송비용 회수(2021–2022)

2021년 12월, SICC는 Kiri에게 820만 싱가포르 달러(한국돈 약 8.9억원)의 소송비용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싱가포르 사법 역사상 최대 금액의 비용 판결로 기록되었다. 싱가포르 항소법원은 이 판결을 유지하며, SICC의 비용 산정 방식이 중재와 유사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는 싱가포르에서 분쟁 해결을 고려하는 제3자 소송자금 조달자들에게 긍정적인 신호가 되기도 하였다.

5. 강제집행 신청(2023–2025)

2023년 7월, Senda가 자금 확보 불가능을 이유로 매입명령(및 소송비용 배상명령)을 이행하지 않자, Kiri는 SICC에 매입명령을 대안적인 방법으로 집행하기 위한 신청을 제기하였다. Kiri는 다음과 같은 구제 조치를 요청했다.

(1) Senda와 DyStar를 공동 및 개별적으로 책임지게 하여 Kiri의 DyStar 지분 매수를 완료하도록 하는 명령

(2) 부차적으로, DyStar의 전체 지분을 일괄매각(en bloc sale)하고, Kiri가 미화 6억 380만 달러와 이자 및 소송비용을 Senda보다 우선적으로 지급받도록 하는 명령

(3) 주식 매수를 감독할 수탁관리인(receiver and manager) 임명

(4) Kiri의 DyStar 지분 매수가 완료될 때까지, 인도국립은행(State Bank of India)의 대출금리(관련 일자 기준 연14.85%)를 적용하여 최종 매수가격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도록 하는 명령

Kiri의 신청은 싱가포르 회사법(Companies Act) 제216(2)조를 근거로 하였다. 동 조항은 주주 보호 및 소수주주 구제를 위한 조항으로, 회사 내에서 부당하거나 억압적인 행위(oppressive conduct), 불공정한 차별(unfair discrimination) 또는 불공정한 편파적 행위(unfair prejudice)가 발생한 경우 법원이 광범위한 구제 조치를 명령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폭넓은 재량권으로 창의적 · 실효적 구제책 명령

특히 제216(2)조의 특징은 법원이 기존의 전례를 따르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사건의 개별적 사정을 고려하여 창의적이고 실효적인 구제책을 명령할 수 있는 폭넓은 재량권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소수주주 보호를 위한 강력한 법적 장치로 작용하며, Kiri는 이를 근거로 DyStar와 같은 고수익 기업에 대한 수탁관리인 임명, 매입명령에 대한 지연이자 부과와 같은 전례 없는 구제조치를 법원이 명령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2024년 5월, SICC는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1) Kiri와 Senda의 DyStar 주식은 일괄매각한다.

(2) Kiri가 지정한 수취인들은 DyStar 주식에 대해 공동 및 연대책임을 지는 수취인(joint and several receivers, 이하 '수취인들')으로 임명되어, 주식을 관리하고 통제하는데 필요한 범위 내에서 일괄매각을 위한 역할을 수행한다.

(3) 일괄매각은 최저가 없이 진행되며, Kiri는 수취인들의 보수를 차감한 후 순매각 대금에서 미화 6억 380만 달러를 Senda보다 우선적으로 수취한다(이하 '우선순위 명령').

제3자도 주식 매입자 될 수 있어

실질적으로, SICC는 기존의 매입명령을 DyStar의 일괄매각으로 대체하는 전례 없는 조치를 취했다. SICC는 일괄매각이 Kiri가 DyStar에서 주식을 매각하여 퇴출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매입명령과 동일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판단했다. 차이점은 주식 매입자가 대주주인 Senda가 아닌 제3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번 판결에서 SICC는 압박을 받은 소수주주인 Kiri의 DyStar에서의 퇴출 요구와 DyStar가 섬유산업의 시장 선도자로서 지속적으로 사업을 이어가려는 입장을 신중하게 고려하여 가장 적합한 구제책을 결정한 것이다.

SICC는 이후 일괄매각의 최종 기한을 2025년 12월 31일로 결정하고, 시간 연장을 신청할 수 있는 권한은 오직 수취인들에게만 부여되도록 하였다.

2025년 1월 , 항소법원은 SICC의 DyStar 일괄매각 및 우선순위 명령을 확정하였다. 항소법원은 매입명령을 일괄매각으로 대체하는 것이 싱가포르 회사법 제216조(2)항에 따른 법원의 구제 권한 내에 속하며, 매입명령에 의해 Senda에게 부여된 재정적 의무를 일괄매각에서도 적용하는 것에 불공정함이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항소법원은 SICC가 Kiri의 DyStar 주식에 대한 공정가치로 산정한 미화 6억 380만 달러의 평가액이 회사법 제216(2)조에 따른 구제 조치의 원칙과 일치하지 않는 불공정성을 이유로 다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판시하였다.

지연 보상도 허용

마지막으로, 항소법원은 Senda의 매입명령 불이행 지연에 대한 보상으로 Kiri에게 일괄매각 대금에 대한 재량적 증액을 허용했다. 이 증액은 연 5.33%(싱가포르의 법정 이자율)로 계산되며, 미화 6억 380만 달러에 대해 2023년 9월 3일 (최종 매수 가격 결정 후 6개월) 이후부터 지급일까지 적용된다. 이 금액도 순매각 대금에서 Senda보다 Kiri에게 우선적으로 지급되게 판정했다.

DyStar 본사의 2009년 독일에서 싱가포르로의 이전 결정은 싱가포르 경제개발청(Economic Development Board)이 제공한 세제 혜택에 의해 촉진되었다. 이 결정은 결국 Kiri v Senda 분쟁에 관할지 선택과 SICC의 활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으며, 최종적으로 DyStar에 대한 일괄매각 명령으로 이어졌다.

싱가포르에 투자하는 한국 기업과 국경 간 분쟁 해결 전략을 고민하는 법률 전문가들에게 SICC는 단순한 중재 대안이 아니라, 국제 분쟁 해결을 위한 전략적 선택지로 고려될 수 있다고 본다. 본 사례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실무적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정솔 싱가포르 변호사(jung.sol@agasia.law)

◇Allen & Gledhill의 소송 및 분쟁 해결 부서 소속인 정솔 변호사는 한국계 싱가포르 변호사로, 소송과 비소송 분야 모두에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 싱가포르, 한국, 에티오피아 등 여러 국가의 다국적 기업, 금융기관, 정부기관을 상대로 중재, 계약 해석, 규제 준수와 관련된 자문을 제공하며, SICC, 싱가포르 고등법원, 항소법원(대법원장 주심 포함)에서 다수의 재판 경험을 쌓았다. Singapore Management University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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