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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라 평일 주간에는 통화가 어렵습니다.”
지난주 기자로부터 취재 요청을 받았다. 회사 업무가 밀려 바로 대응하지 못하고 일과 이후로 미뤘다. 약속 시각을 다시 조정한 끝에 토요일 오후 3시에 첫 통화가 이뤄졌다. 휴일로 미루고 싶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한 ‘백곰’ 프로젝트에 대해 물어왔다. 백곰은 대학생이던 지난해 전국 각지에 흩어진 6명의 학부생이 팀을 이뤄 해커톤에 도전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대학생을 포함한 20대들이 백신과 같은 의료 정보에 둔감하다는 점에 착안해 20대를 위한 백신 추천 서비스를 만들었고 최우수상을 받았다. 팀명이자 서비스 이름인 백곰은 ‘백신아, 곰아워’를 줄인 것이다.
우리는 해커톤 이후 같은 해 8월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실제 배포 단계까지 진행하는 해커톤에 도전했다. 보통 공모전이나 대회에 출품한 서비스는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흐지부지되거나 고도화 단계로 나아가기 어렵다. 해커톤에서는 2~3일 동안 집중해서 MVP를 만들고 발표하는 게 목표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서비스로 발전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팀은 많지 않다. 매년 수십 개의 해커톤이 열리고 아이디어가 쏟아지지만, 실제 서비스로 이어지는 건 극소수다. 대부분은 개발비 부족, 유지보수 인력 충원 등의 한계로 사라진다.
백곰은 실사용자 대상으로 피드백을 받으면서 방향을 바꿨다. “이 기능, 영유아 부모들에게 더 필요할 것 같다”는 팀원들의 의견이 모이면서 기존 백신 접종 추천 기능에 영유아 건강검진 정보, 응급실 조회 서비스 등을 추가했다. 그렇게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를 위한 백신 정보를 추천하고 육아에 필요한 의료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이 과정에서 팀원도 6명에서 7명으로 늘었다. 이 중 취업자인 5명은 본업과 병행하며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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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의 열정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지만 취업에 성공했다고 해서 등한시하지 않았다. 특히 의료 영역은 공공의 성격이 강해서 정보불평등 해소라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서비스에 대한 팀원들의 열망이 크다. 퇴근 이후 혹은 주말 시간을 쪼개 개발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개발 기간이 아닐 때는 온라인에서 모여 수다를 떨기도 한다.
백곰이 프로젝트를 지속할 수 있었던 건 브라이언임팩트 재단의 지원 사업 ‘사이드임팩트’ 덕분이다. 사이드임팩트는 백곰처럼 공익 목적의 개별 프로젝트를 발굴해 지원하는 사업이다. 기술 기반 프로젝트가 세상을 바꾼다는 재단의 믿음과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열망하는 사람들이 만나 현재 30여 프로젝트가 개발 중이다. 이들 서비스가 고도화되면 세상은 달라질 수 있을까.
과거 세탁기와 식기세척기의 발명으로 가사노동 시간이 대폭 줄었고, 엘리베이터와 자동변속기의 등장은 장애와 비장애의 벽을 허물었다. 이러한 혁신 기술에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의 보편적 행복을 고민하던 사람들의 열정이다. 누군가의 편의를 위한 기술은 모두가 편해지는 지름길이다.
사이드임팩트에 선정된 팀들을 지켜보면서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함께 가는 것은 멀리 갈 뿐 아니라 더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