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할 자유’는 신의 뜻에 반하는 것일까

2024-09-25

신앙생활이 건강하지 못할 때 신체적 질병이 발생한다. 영국 심리학자 한스 아이젠크는 성격과 질병의 인과관계에 대해 10년간 4000명을 조사한 결과, 자율성이 낮고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이 가장 쉽게 암에 걸린다는 것을 밝혀냈다. 맹목적으로 순종적인 신앙인들이 병에 걸리기 쉽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을 혹독하게 대하는 자기 고문을 ‘자기성찰’이라고 하면서 자학적인 신앙생활을 한다. 이들은 대개 자신보다 타인을 더 배려하고, 자신에게는 무관용이다 못해 혹독하기까지 하다. 이들은 자신의 심리적인 자유를 포기하는 것을 올바른 신앙생활이라 여긴다. 이들이 포기하는 것 중 하나가 ‘미워할 수 있는 자유’이다.

미움은 불가피한 삶의 그림자

나쁜 감정 아니라 불편한 감정

억압하면 암 같은 질병 되기도

잘 해소하면서 사는 것이 현명

착한 사람이 병에 잘 걸리는 이유

많은 종교가 사랑을 강조하면서 미움을 없애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신의 뜻이 아니라고. 그래서 수많은 신실한 신자들이 미운 감정을 없애려고 전력을 다하거나 미운 마음이 가시지 않는 자신을 질책하면서 산다. 심지어 미운 감정을 더러운 것으로 여겨서 아예 다루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미움은 안 본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미움은 마치 그림자처럼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기에 그 존재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미움은 없애야만 하는 악한 것인가. 없앨 수는 있는 걸까. 미움은 감정이다. 감정은 몸의 근육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근육이다. 나쁜 감정이 아니라 불편한 감정이다. 어떤 신체 부위가 불편하다고 없애지 않는 것처럼 미움 역시 제거할 수 없다. 그런데도 미움을 없애려고 하는 사람들은 정신적 불구가 될 위험성이 크다. 없어지지 않는 미움을 적대적으로만 대한다면 종교적 망상이 생길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또한 미운 감정을 억압하게 되면 여러 신체적 질병에 시달린다. 눌러놓은 미움이 신체의 가장 약한 부위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나치게 착한 사람들이 질병에 시달리거나 심지어 암에 걸린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미움을 제거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마음 안에 사랑만이 남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착각이다. 미움이란 감정이 사라지면 사랑이란 감정도 사라진다. 미움과 사랑은 한 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성 심리에서는 미움이 많다는 것은 사랑할 가능성도 많은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 타령하는 사람들의 가면

어떤 사람이 자기는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한다면 그를 대하는 기분이 어떨까? 존경스럽기는커녕 왠지 거부감과 이질감이 느껴지며 이 사람이 제정신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오로지 사랑만을 주장하는 공동체를 다녀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길 처음에는 좋았는데 시간이 가면서 사랑 타령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웃는 가면이 덮어씌워진 것 같아서 섬뜩했다고 한다.

미워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허언을 늘어놓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애적 성격장애자, 자기도취적 종교인이며, 연극성 장애와 히스테리성 성격장애자인 경우도 많다. 그래서 그들과 가까이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대중 앞에서 보이는 모습과는 판이한 모습에 질린다고 한다. 그들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는 폭력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외부에서 사랑 타령을 하는 사람 중에 가정폭력을 일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억눌린 미움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터뜨리는 것이다.

에너지가 넘쳐야 미워할 수도 있어

미움이 많다는 것은 지금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에너지가 넘친다는 것이다. 피곤하고 약해지면 누구를 미워할 엄두도 못 낸다. 그래서 마음 안에 미움과 사랑의 에너지가 강한 충돌을 하고 갈등이 생길 때 가장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 미움은 인류 진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움은 현재 자신의 영적 수준을 드러내기도 한다. 여러 가지 영적 연출로 자신을 포장하고 마음 맞는 사람끼리 서로 칭찬을 주고받으면서 스스로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던 환상을 미움은 한방에 깨뜨려 준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야 한다. 미워할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무조건 상대방의 욕구를 맞추어 주는 것이 사랑인 것인가? 사랑 강박증이 과연 신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인가? 미움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해소해야 하는 것이다. 음식을 먹으면 배설물이 생기듯 미움 역시 사람들과 함께 사는 동안에는 늘 생기는 것이기에 잘 해소하면서 사는 것이 현명하다.

그래도 언제까지 이렇게 미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느냐면서 스스로 한심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위안의 말을 전한다면 우리가 가진 미움 에너지에는 한계량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평생을 미운 감정 안에서 살 리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다지 위로가 안 되는 위로의 말이다.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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