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르익은 봄이었습니다. 꽃이 피고 새가 울면 소풍을 갔습니다. 가까운 절이나 큰 다리, 산 아래 야트막한 언덕이었습니다. 창경원요? 2박3일 수학여행은 졸업 학년 부잣집 아이들이나 갔었고요. 평소 구경 못 하던 하얀 쌀밥 눌러 담고 다꾸앙 콩자반 멸치조림, 국물 안 새는 찬이었지요. 기와집 친구의 김밥은 그 애 누님 솜씨였고요. 없는 물통은 마음으로나 둘러맸습니다. 어머니가 동생 몰래 주신 몇 푼 용돈을 넣어둔 개춤을 자주 확인했지요. 교문 앞에 나라비 선 장사꾼 사이를 꿀꺽꿀꺽 오갔지요. 사이다도 못 사고, 수리미 다리도 못 사고, 십 리나 안 녹는다는 오다마 한 알 오래 입에 물었던 성싶습니다. 그랬지요, 소풍날은 자주 비가 왔었지요. 폐병쟁이 5학년 3반 선생님이 학교 지키는 구렁이를 잡아먹어서 그런다고, 재작년 홍수 때 다리 건너다 헛발 디뎌 떠내려간 아래 뜸 그 가시네 심통이라고 수군거렸습니다. 밴또를 까먹고 어머니가 큰맘 잡수고 삶아주신 계란도 두어 알 가슴 두드리며 먹고 나면 보물찾기를, 노래자랑을 했었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내 눈에 보물은 영 안 보이고요. 노래자랑은 숫기 없어 옹알이나 하다가 말았고요.
소풍날 비가 온대도, 꽃이 덜 피었대도 낙담할 일 아니었습니다. 봄 소풍에 비 오면 가을 소풍 쨍했을 테니까요. 못 본 봄꽃 대신 가을 단풍 보면 될 일이었으니까요.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옛날입니다. 천상병 시인은 이 세상을 ‘소풍’이라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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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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