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크닉처럼 떠나 캠핑처럼 먹는다

2025-04-25

알고보니 나, ‘캠세권’ 주민…서울 한복판 중랑캠핑숲으로 당일치기

미리 믹서기에 갈아둔 반죽 들고…피크닉에선 못하는 ‘요리’ 도전

팬에 붓고 잘 접으면 ‘완성’…각종 과일·누텔라 곁들여도 좋아

나는 몰랐다, 내가 ‘캠세권’에 살고 있다는 걸. 캠핑하러 다니지 않을 때는 찾아보지 않아서 몰랐고, 캠핑을 시작한 이후로는 도심과 캠핑은 공존할 수 없는 단어인 줄로만 알아서 도시 경계선을 넘어선 곳의 캠핑장만 찾아다녔기 때문이다. 물론 매일 마감을 쳐내는 주중의 나와 ‘일상탈출’을 꿈꾸는 주말 캠핑의 나를 완전히 구분하고 있던 것도 한몫했다. 여유는 평소의 삶을 떠나야만 가능한 것, 주중은 실수가 없도록 긴장을 내려놓을 수 없는 시간. 이러면 이제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일할 때와 놀 때의 괴리감만 심해진다.

캠핑과 피크닉 사이 어딘가

‘놀고 싶다! 출근하기 싫다!’ 문제는 아무리 캠핑이 그리워도 매주 주말마다 시간을 내는 것이 항상 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결혼식이 열리고 가족 행사를 챙겨야 하며 쉬는 날에만 만날 수 있는 사람과 치워야 하는 집이 있다.

그렇게 한 주일씩 뒤로 밀리는 캠핑 일정에 서글퍼하던 어느 봄날, 언제나처럼 지나치던 도로 표지판에서 익숙한 단어를 발견했다. 어? 캠핑? 중랑캠핑숲? 캠핑장이 우리 구에 있다고? 아무리 그래도 여기 서울 한복판인데?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지하철로 갈 수 있는 위치에 캠핑장이 있었다. 캠핑 사이트는 물론이고 한낮의 바비큐장까지 예약해서 이용할 수 있는, 그리고 놀랍도록 숲속에 들어온 것처럼 녹음이 우거진 캠핑장이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나의 ‘캠크닉’이. 바쁜 현대인의 캠핑놀이, 캠크닉은 캠핑과 피크닉의 합성어로, 보통 당일치기로 가볍게 다녀오는 근처에서 즐기는 캠핑을 뜻한다. 피크닉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당연히 조리가 가능한 공간일 것을 전제로, 캠핑 도구를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는 것? 피크닉 매트를 넘어 의자와 테이블을 세팅하고 편안하게 앉아 노닥거린다는 것? 글쎄, 사실 이런 건 굉장히 애매한 영역에 걸쳐 있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테이블을 깔고 요리를 시작하는 순간, 타프 혹은 텐트를 치거나 ‘차크닉’처럼 자동차를 세팅하는 순간부터 캠크닉의 영역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내리쬐는 햇빛에 노출되는 것 외에는 땀 흘릴 일이 없으면 피크닉, 바비큐 그릴에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거나 한강라면 조리기가 아닌 ‘부루스타’에 물을 끓이면 그건 캠크닉이다. 하지만 도심 내 캠핑장의 장점은 도로 건너 아파트처럼 음식 배달을 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니 캠핑이라고 해서 꼭 요리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타프나 텐트를 쳐서 드러누울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순간부터 그건 피크닉이 아니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즐기는 한강공원 피크닉에도 텐트를 칠 수 있는 장소는 따로 정해져 있을 정도니까. 그리고 당연히 텐트든 자동차든 일단 1박을 하는 순간부터 캠크닉에서 캠핑으로 넘어간다고 본다. 그러니까 캠크닉이라면 당일치기여야 마땅하다.

사실 밖에서 자는 건 로망이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누울 자리도 만들어야 하고, 나름 햇볕과 바람을 막는 지붕과 벽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해가 지면 캠핑장은 빨리 어두워지고 기온도 훅 내려간다. 유사시에 대비해야 할 영역이 넓어진다는 뜻이다.

우리 가족의 캠핑 세팅은 기본적으로 캠핑카라서 침실을 들고 다니는 셈이라 텐트를 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좁은 공간에서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는 그 분위기 전환의 순간이 사라지면 챙겨야 할 짐이 많이 줄어든다. 즉 비교적 짧은 여유 시간에도 짐과 준비물에 대한 부담이 적게 즐길 수 있는 캠핑이 바로 캠크닉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부담이 없으니 ‘캠핑 체험판’을 제공하기에도 좋다. 주말이면 캠핑을 만끽하는 사진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릴 수 있게 된 이후로 나를 만나면 캠핑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지인이 늘었다.

“재밌겠다. 캠핑을 하려면 뭐가 있어야 해? 그렇게 필요한 게 많아?” 그렇게 입문하기 벅찬 장비 장벽에 부딪혀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캠핑을 체험해보고 싶어 하는, 요리하기 좋아하고 먹는 것 좋아하고 놀고 싶어 하는 호기심 많은 사람. 나무 그늘 아래서 라면만 끓여도 좋아할 이 사람들에게 야외에서 씻고 자는 본격적인 캠핑 이전에 캠크닉을 제안해 본다.

함께 식재료를 준비해서 나의 캠핑 장비로 요리하고 먹고 놀아볼까? 취향에 맞으면 그때 직접 시작해보면 된다. 그러니 밖에서 밥하고 나누어 먹는 캠핑이 잘 맞을지 부담없이 ‘맛보기’를 해보고 싶다면, 그리고 도저히 며칠씩 시간을 내기는 힘들지만 잠시라도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당일치기 캠크닉을 떠나보자. 차는 렌트나 카셰어링을 이용해도 되고, 필요한 것만 빌려도 된다. 정말 단순한 캠크닉에 필요한 도구는 테이블과 의자, 조리도구와 식기 정도이니까.

미처 깨닫지 못한 내 취향에서 몰랐던 우리 인근의 도심 캠핑장까지 알게 되는 순간이 될 수 있다. 지금도 놀랍다. 풀코스 캠핑 사이트를 모두 갖춘 캠핑장이 아파트촌 건너에 있다니! 나만 몰랐어? 가까운 녹지가 이렇게 심신에 평안을 주다니! 사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니 캠핑을 시작하기 전보다 내 세상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뜻이 되기도 하겠다. 풍성해진 내 마음속 동네 지도도, 잠깐의 휴식을 즐길 줄 아는 마음가짐도.

봄날의 레몬 크레페

이번 캠핑에 무슨 음식을 할 것인가는 대체로 신내림처럼 찾아오는 편인데, 봄바람이 불어오면 파리의 알렉상드르 3세 다리 노점상에서 샀던 레몬 크레페가 떠오른다. 넓게 펼쳐서 구운 크레페를 반으로 접고 설탕과 레몬즙을 뿌린 다음 다시 3등분으로 접어서 건네주던 그 크레페, 새콤달콤 설탕이 씹히던 길거리 크레페. 이걸 어떻게 해야 캠크닉에서 간편하게 만들 수 있을까?

정답은 믹서기다. 크레페 반죽은 원래 하룻밤 재워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리 만들어도 문제가 없다. 캠크닉을 떠나는 아침, 믹서기에 밀가루와 달걀, 오일 등 필요한 모든 재료를 넣고 모조리 드르륵 갈아버린다. 묽은 농도로 뚝뚝 떨어지는 상태를 보고 그대로 뚜껑을 닫아 캠핑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밥을 잘 먹는 동안 시원한 차 안에 보관해놨다가(여름에는 아이스박스 보관) 파워스토브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반죽 뚜껑을 연다.

기름 묻힌 키친타월을 준비한다. 그리고 달궈진 팬에 키친타월을 문질러 기름을 바르고 반죽을 붓고, 익으면 뒤집고 설탕을 뿌려서 마저 굽고 착착 접어 접시에 담기를 반복한다. 레몬 제스트를 뿌려도 좋고, 언제나 정답인 누텔라와 바나나를 넣어도 좋다. 딸기, 생크림, 꿀과 블루베리, 유자청과 크림치즈. 크레페에 어울리지 않는 과일과 단것이 어디 있을까? 봄날처럼 예쁜 캠크닉 디저트로 이만한 것이 없다.

레몬 크레페 레시피

재료

달걀 1개, 우유 160㎖, 박력분 ½컵(70g), 녹인 버터 또는 식용유 2작은술, 소금 한 꼬집, 설탕 2작은술, 조리용 식용유, 레몬 1개, 설탕 약간

만드는 법

1. 믹서기에 조리용 식용유를 제외한 모든 재료를 넣고 곱게 갈아서 밀폐 용기나 지퍼백, 깨끗하게 씻은 생수병 등에 담아 냉장고에 넣는다.

2. 그리들 또는 구이바다 전골팬, 프라이팬 등을 중약불에 달궈서 식용유(또는 버터)를 살짝 두른다.

3. 크레페 반죽을 넣고 얇게 펴서 굽는다.

4. 뒤집어서 반대쪽을 굽는 사이에 레몬즙을 약간 뿌리고 설탕을 뿌린다.

5. 두 번 접어서 접시에 담는다. 레몬 제스트나 설탕 등을 뿌려 먹는다.

■정연주

캠핑 다니는 푸드 에디터, 요리 전문 번역가. 르 꼬르동 블루에서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고 요리 잡지에서 일했다. 주말이면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맛캠퍼로 ‘캠핑차캉스 푸드 라이프’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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