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파수 간섭 제거 기술로 글로벌 시장 공략
– 개방과 공유의 시대에서 통신 혁명을 이끌 기술로 주목 받아
– “글로벌에서 기회 찾으라”
“주파수 간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신사들은 각자 기지국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통화 간섭 문제는 해결됐지만 비용 부담으로 인해 기지국 설치를 망설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의 기지국에서 여러 통신사가 함께 서비스할 수 있다면 5G는 훨씬 빠르게 확산될 수 있습니다.“
이재복 이랑텍 대표는 28년간 한 우물만 파온 통신 전문가다. 텔웨이브, 에어텍시스템에서 20년간 연구소장을 지낸 그는 2017년 통신 인프라 장비 제조 기업 이랑텍을 창업하면서 통신망 통합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이재복 대표를 만나 통신망 통합장비 기술과 시장에 대해 들어보았다.
LTE보다 느린 5G
한국은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를 시작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5G는 LTE보다 느리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통신은 전파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여러 주파수의 전파가 한 공간에 공존할 때 서로 간섭을 일으키는 특성이 있다. 이는 마치 잔잔한 호수에 여러 개의 돌을 던졌을 때 물결이 서로 부딪치며 일어나는 현상과 비슷하다. 통화 중에 가끔 상대방의 음성과 함께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이러한 전파 간섭 때문이다.
음성통화가 주를 이루던 2G 시대에는 간섭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동영상 등 데이터 통신이 시작된 3G 시대부터는 간섭에 대한 우려가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웹 기반의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하는 LTE와, 자율주행이나 원격의료 같은 첨단 서비스를 제공하는 5G 시대에 이르러서는 급증하는 데이터양으로 인해 간섭 문제가 더욱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통신사들은 이러한 간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예 기지국을 따로 설치하기 시작했다. 간섭 문제는 해결되었으나, 기지국 설치와 운영에 따른 비용이 문제가 됐다. 5G 통신의 가장 큰 기술적 제약은 촘촘한 기지국 설치가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4G(LTE)는 저주파 대역을 사용하여 전파 도달 거리가 긴 반면, 5G는 고주파를 사용하기 때문에 전파 도달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다. 이로 인해 동일한 면적의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LTE 대비 최대 4배 많은 기지국이 필요하다. 통신사들은 가입자 수와 관계없이 서비스 지역을 커버하기 위해 각각 기지국을 설치해야 하므로, 물리적으로 계산하면 기존 대비 3배의 기지국이 추가로 필요하다. 기존 LTE 투자금도 완전히 회수하지 못한 상황에서 5G에 대한 과감한 추가 투자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5G 기지국은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린다. 고주파 사용으로 전력 소비가 LTE보다 2~3배 많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이 화두가 되면서 전력 소비는 더욱 민감한 문제가 됐다.
이처럼 높은 구축 비용과 과도한 전력 소비 등 여러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5G 서비스의 확산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와이어리스‘ 방식으로 주파수 간섭 문제 해결
이랑텍은 통신사들이 하나의 기지국을 공유할 수 있게 하는 ‘멀티플렉서’를 개발해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여러 통신사의 주파수가 섞이면서 발생하는 간섭 문제를 해결한 것이 특징이다.
각 통신사의 서로 다른 주파수를 하나로 묶으려면 동선(銅線)으로 연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심각한 간섭이 발생한다. 이랑텍은 동선 때문에 간섭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아예 동선이 없는 ‘와이어리스’ 방식으로 간섭 문제를 해결했다. 이랑텍의 ‘공용폴’ 솔루션(Wireless combine)은 와이어 없이도 여러 주파수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기술이다.
이 대표는 도로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10차선 도로가 있는데 출구가 하나라면 차들이 몰리면서 혼잡이 생깁니다. 하지만 그 앞에 회전교차로를 설치하면 차들이 순조롭게 빠져나갈 수 있죠. 우리 기술은 여러 통신사의 주파수를 질서정연하게 정리해 간섭 없이 전달할 수 있게 합니다.“
이랑텍이 개발한 공용폴 솔루션은 여러 주파수가 동시에 입력되어도 충돌 없이 결합할 수 있고, 출력 시에도 간섭 없이 동시 처리가 가능한 기술이다. 특히 이 기술은 PIMD(상호변조왜곡신호) 150dBc 이상을 구현하여 국제 규격에서 요구하는 통합망 기준을 완벽히 충족하고 있다. 이랑텍의 공용폴 방식은 세계 최초로 개발된 기술로, 2G부터 5G까지 모든 통신 세대에 적용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이미 미국, 일본, 중국에서 특허를 취득했으며, 최근에는 인도에서도 특허를 출원하여 기술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랑텍의 공용폴 기술이 상용화되면서 통신사들의 기지국 구축 비용이 최소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하게 되었다. 이러한 구축 비용 절감은 5G 서비스 확산을 가속화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소비자들의 통신비 인하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이 기술을 통한 통신 장비 축소는 여러 가지 부가적인 이점을 제공한다. 건물 관리가 용이해지고, 화재 등 사고 위험이 감소하며, 도시 미관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전력 사용량의 획기적인 절감 효과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 대표는 “SK텔레콤이 당사의 기술을 적용해 3G-LTE 장비를 통합한 결과, 전력 사용량을 53%까지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오픈랜’의 가치와 일치
망 구축 설계를 공유하고 장비를 공동으로 사용하자는 오픈랜(개방형 무선접속네트워크, Open RAN) 움직임이 통신업계에서 모색되고 있다. 오프랜은 무선 기지국 연결에 필요한 인터페이스와 기지국 운용체계(OS)를 개방형 표준으로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네트워크 장비의 하드웨어(HW) 종속성을 탈피해 유연한 기술 진화를 표방하는 5세대(5G) 이동통신 핵심 기술이다.
이 대표는 ”2G부터 LTE까지 통신사들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네트워크를 고수해왔습니다. 타사의 기술은 물론, 자사의 기술도 공개하지 않은 채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정원처럼 폐쇄적으로 운영했습니다. 그러나 5G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폐쇄성이 한계에 직면했습니다. 막대한 구축 비용과 전력 소비 문제를 개별 통신사가 감당하기 어려워진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픈랜이 이와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통신업계의 새로운 해법으로 등장한 것입니다.”라며 오픈랜이 이랑텍의 기술 방향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기회 포착
최근 이랑텍은 미국 통신장비 제조사 페러렐 와이어리스(PW)와 3년간 780억원 규모의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유럽 시장에 멀티플렉서 48만대를 납품하는 계약이다.
이 대표는 “글로벌 시장은 아직 기회가 많습니다. 전 세계 190여 개국 중 절반은 아직도 2G, 3G를 사용하고 있으며, LTE도 이제 시작하는 나라가 많은 상황입니다. 해외 5G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장되는 시점을 고려하면, 향후 최소 10년간 중계기 수요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됩니다.”라고 글로벌 시장의 잠재력을 설명했다.
이에 대비해 이랑텍은 현재 중국과 베트남에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있으며, 인도 시장 진출도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인도에서는 현지 기업과 합작법인을 설립하여 제조 거점을 마련할 계획이며, 본사는 R&D와 마케팅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이 대표는 “우리 기술로 전 공정 자동화가 가능해질 것이며, 한국이 키운 이랑텍이 아닌, 글로벌이 키운 이랑텍으로 성장하겠습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계측 장비 공유 플랫폼 개발
이랑텍은 본업인 통신필터 외에도 계측장비 공유 플랫폼 ‘나스큐브(NAS Cube)’를 개발했다. 통신장비 제조에 필수적인 계측장비는 대당 1억~3억원에 달하는 고가의 장비로, 현재 글로벌 탑 3개 브랜드의 제품만이 시장을 독점하고 있어 기업들의 도입 부담이 매우 큰 상황이다. 나스큐브는 한 대의 계측장비를 최대 4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혁신적인 솔루션이다.
이 대표는 “생산량 증가에 따라 계측장비를 추가로 구매하면 비용 부담이 너무 커서, 기존 장비를 효율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글로벌 계측장비 업체들도 자사 중고장비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어 우리 기술을 환영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시장에 대한 이해와 글로벌 타깃 전략 필요”
이랑텍은 2024년 흑자전환을 시작으로 2026년 코스닥 소재부품장비 특례 상장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이 대표는 “내년에는 30~4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동안 이랑텍은 거대 통신사를 상대로 한 영업의 어려움과 함께, 많은 통신장비 제조 기업들이 시장에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왔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대표는 후배 창업자들에게 “최소 7년, 늦어도 10년은 버틸 수 있는 철저한 재원 계획이 필요합니다.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며, 시장을 이해하고 글로벌을 바라보는 안목이 반드시 필요합니다.”라고 조언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