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작스레 교황이 선종한다. 전세계 추기경들은 바티칸에 모여 새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선거 ‘콘클라베’를 시작한다.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단의 단장인 로렌스(레이프 파인즈)는 콘클라베의 총책임자가 돼 공정한 선거를 위한 임무를 수행하는데 유력한 차기 교황 후보들을 대면할수록 부패한 교회의 민낯과 권력을 둘러싼 추문을 마주하게 된다.
로버트 해리스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 ‘콘클라베’는 신성한 종교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암투를 통해 최선의 정치란 무엇인지 흥미롭게 이야기한다. 로렌스 추기경은 콘클라베가 시작되기 전 강론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 “하느님께서 교회에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다양성이고,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죄는 확신입니다. 의심 없는 확신은 관용의 가장 치명적인 적입니다.” 인간은 믿음이라는 재료로 종교를 발명했다. 하지만 종교적 확신 혹은 맹신은 때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폭력적 행태를 띠었다. 우리는 종교인이기 이전에 자연인으로서 의심해야 한다. 의심한다는 건 계속 따져 묻는 것이다.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의심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의심하는 자는 진실을 구하는 자다. 로렌스 추기경이 선거를 앞두고 의심과 확신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뭘까. 그는 답을 안다고 확신하는 자가 아닌, 진실을 찾기 위해 의심하는 자를 믿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영화에 등장하는 유력한 차기 교황 후보는 라틴어 미사의 부활을 얘기하는 강경 보수주의자 테데스코, 혼외자 문제가 있는 아프리카 출신의 아데예미, 진보 진영의 벨리니와 비리를 숨기고 있는 트랑블레다. 여기에 추기경 명단에도 없던,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멕시코인 대주교 베니테스가 나타나 선거전의 양상을 바꿔놓는다. 각기 보수와 진보 진영을 대표해온 기존의 추기경들이 확신형 인간이라면, 로렌스와 베니테스는 의심형 인간으로서 권력 자체를 의심한다.
보수 진영에 교황 자리를 내줄 것 같은 위기감을 느낀 벨리니는 로렌스에게 말한다. “이건 전쟁입니다. 단장님도 한쪽 편에 서야 해요.” 하지만 정치는 편 가르기가 아니라 화합을 위해 작동해야 한다. “증오에 굴복해 ‘우리 편’과 ‘저 편’을 이야기하며 형제자매라 부르기를 그만둔다면, 우리는 이미 패배한 것입니다.” 베니테스의 대사처럼, 이것이야말로 품 넓은 관용의 정치고 최선의 정치다.

이주현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