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택배·대리운전 기사들
영하권 날씨에 무방비 노출
도로 결빙 운전 위험도 커져
“불경기에 벌이 줄어 더 설움”
서울 15곳 쉼터 그나마 위안
“추위 피할 수 있고 핫팩도 줘”
접근성 한계… 확대 설치 지적
“춥다 추워. OO동 배달이요.”
서울의 체감온도가 -19도까지 떨어진 4일 오후 9시쯤. 서울 강남역의 한 햄버거 프랜차이즈 매장에는 방한도구로 중무장한 40대 A씨가 배달 음식을 픽업하기 위해 들어섰다. 그가 얼굴에 꽁꽁 싸맨 마스크와 목도리를 걷어 내리자, 홍조로 잔뜩 붉어진 얼굴이 드러났다. A씨는 “오전 11시부터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데, 날씨가 정말 춥다”며 “이게 생업이라 날씨가 춥다는 이유로 쉴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종일 밖에 있는데, 오토바이에 기대앉아있는 것이 휴식의 전부”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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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영하권의 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강추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이들이 있다. 배달기사를 비롯해 대리운전기사, 택배기사 등 이른바 ‘이동노동자’들이다. 종일 밖에서 일해야 하는 이들에게 편한 계절이 없지만, 요즘처럼 몸이 굳을 정도로 추운 날씨에는 이들의 고충이 가중되고 있다.
이동노동자 중에서도 오토바이를 주로 타는 배달기사들은 온종일 추위를 온몸으로 감당해야 한다. 5일 서울 성수동의 한 오피스텔 앞에서 만난 배달기사 김민재(38)씨는 궂은 날씨에도 매일 14시간씩 핸들을 잡는다. 김씨는 “우린 종일 오토바이 위에 있어서 더 춥다”며 “날씨가 추워지면 도로 위에 블랙아이스도 생기기 때문에 운전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실제로 다친 배달기사들도 많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20대 배달기사 B씨는 “자비 들여 방풍 가림막을 해놓고, 휴대전화 방전을 막기 위해 거치대에 열선을 설치해야 한다”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배달을 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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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살을 에는 강추위보다 어려워진 경제 상황이 더 걱정이다. 어수선한 정국 속에 불경기까지 더해지자 추운 날씨에도 밖에서 일없이 시간을 때우는 경우가 늘고 있다. 50대 대리기사 C씨는 “지난해 여름과 비교하면 체감상 손님이 20% 정도 줄었다”며 “손님들도 경기가 안 좋으니 지갑을 닫는데, 특히 계엄 사태 이후로는 모임과 회식이 확연하게 줄었다”고 푸념했다.
이런 이동노동자들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지자체에서 마련한 ‘이동노동자 쉼터’다. 서울시와 자치구들은 15개소의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인천과 경기 부천, 경남 창원 등 전국 지자체 곳곳에서도 쉼터를 열고 있다. 전날 밤 취재진이 찾은 서울 서초, 합정 쉼터와 부천 쉼터는 대리기사 등 이동노동자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북적였다. 무료로 이용하는 쉼터에서 휴대전화를 충전하며 휴식을 취하거나, 안마의자에 앉아 잠시 단잠을 자는 사람도 있었다. 서초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던 7년차 대리기사 50대 김모씨는 “쉼터가 없을 땐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기)나 지하철역 대합실, 편의점 등에서 쉴 수밖에 없었다”며 “추위를 피하고 핫팩도 받을 수 있는 쉼터가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부천 쉼터는 법률 상담 등 각종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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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쉼터가 없는 자치구가 많아 접근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엔 15개 쉼터가 운영 중인데, 강동·강북·노원·동작·양천·종로구 등 25개 자치구 중 14개구엔 쉼터가 없다. 한 배달기사는 “쉼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강서구의 한 쉼터에 찾아갔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며 “바쁜 주말에도 쉬는 경우가 있어 그냥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쉼터 확대가 필요하지만, 예산 문제가 걸림돌이다. 서울시는 2023년까지 ‘1자치구, 1쉼터’를 약속했으나, 지지부진한 상태다. 시의 쉼터를 운영 중인 서울노동권익센터 예산도 전년도보다 올해 8억3812만원이 줄었다.
쉼터 존재를 모르는 이동노동자가 많아 홍보도 절실하다. 취재진이 만난 배달기사 중 상당수는 “쉼터가 있는 지도 몰랐다”고 답했다.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거점형 쉼터는 접근성에 한계가 있어 이동노동자들의 동선 중간중간에 간이 쉼터가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구 위원장은 “배달의민족 등 배달 앱에서 추운 날만 배달 단가를 일시적으로 올리는 것도 문제다. 그래서 추운 날임에도 억지로 일하는 라이더들이 많다. 이런 차이가 줄어야 휴식이 좀 더 보장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한서 기자 jh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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