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될 인재

2025-01-26

나는 1967년생이다. 과학기술 발전의 의미를 피부로 느끼며 살아왔다. 냉장고는 여름철 음식 보관 고민을 덜어주었고, 세탁기와 가루세제는 주부를 위한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뿐인가! 궁금한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날이면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신기술, 신제품의 혜택을 즐기는 사이, 우리는 점점 편리하고 윤택한 삶에 적응되어 갔다. 신제품 출시 광고는 보다 윤택한 삶을 희망하는 소비자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문구로 채워졌다.

가습기 살균제 유통 17년 뒤

전국서 호흡기 질환자 이어져

‘전량회수’ 뒤에도 6년간 판매

‘인체무해’ 내건 소독제 유통중

환자 발생 후에야 동물실험 뒷북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발생되었다. 추운 겨울, 우리는 집 안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난방을 했다. 그런데, 실내 온도가 올라가면서 건조해진 실내 공기로 가족들의 호흡기와 피부가 건조해졌다. 주부들은 수건이나 빨래를 집안에 걸어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지혜를 발휘했고, 기업은 가족의 건강과 집안 미관을 고민하는 주부들을 위해 가습기를 개발했다. 그러나, 가습기 안에서 증식하는 세균을 제거하기 위해 가습기를 주기적으로 세척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다. 1991년부터 세정과 살균력이 강한 화학물질인 PHMG와 MIT/CMIT의 제조기술을 개발 중이던 SK케미칼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994년, SK케미칼은 가습기 물에 첨가해 사용하면 세균 증식에 대한 걱정 없이 가습기를 사용할 수 있는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 성분들은 옥시·애경·LG생활건강 등 생활화학제품 제조회사에 공급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장 규모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가습기 보급량이 점차 확대되면서 가습기 살균제 판매량은 급격하게 증가했다.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유사 업체들도 신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기에게도 안심’ ‘인체에 안전한 성분으로 구성’ ‘인체에는 전혀 해가 없습니다’ 등의 광고가 사용됐다. ‘살균제’라는 단어에서 떠오르는 소비자들의 합리적 의심은 유명 생활화학 제품 판매회사의 광고문구 앞에서 기우인 것 같았다.

그로부터 약 17년이 지난 2011년 봄부터 원인 미상의 호흡기 질환 환자가 전국에서 발생했다. 역학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일 것으로 추정됐다. 그해 말 보건복지부는 동물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판매 중인 제품 중 6종 제품에 대해 전량 회수 결정을 내렸다. 수거 제품 목록에 들어가지 않은 가습기 살균제도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 것이다. 동물실험은 판매를 승인하기 전에 이루어졌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만약, 이 제품들이 의약품으로 분류되었다면 당연히 호흡기 안전성 시험결과 보고서를 제출했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제품들은 공산품으로 분류돼 ‘품질경영 및 공산품 안전관리법’에 따른 기준만 통과하면 판매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화학물질관리법을 강화하고,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과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호흡기는 안전할까? 지금 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들은 안전한 제품들일까? 불행히도, 아니다. 전량회수 결정이 내려진 지 6년이 지난 2017년 10월 31일까지 가습기 살균제가 판매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2019년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또 다른 유형의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되었다. 분무소독이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이때도 정부는 분무소독을 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그뿐이었던가? 무해하다는 문구를 적은 살균 소독제가 온·오프라인에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무해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험결과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인체 무해’를 광고하는 살균 소독제가 온라인상에서 판매되고 있다.

기업 손들어준 사법부

지난달, 애경산업이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을 상대로 낸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추가분담금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법원은 애경의 손을 들어 주었다. SK케미칼과 애경 전 대표에게 내려졌던 유죄판결 또한 대법원에서 원심 파기 환송 조치되었다. MIT/CMIT의 유해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살균 소독제는 결코 인체에 무해할 수 없다. 살균제는 그 성분은 달라도 결과는 같다. 단지, 그 결과는 노출된 농도와 노출 경로에 의해 결정된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실수가 반복된다면 그것은 더는 실수가 아니다. 실패의 원인을 인정하고 변화하지 않는다면 실패는 계속될 것이다. 소비자는 반드시 안전해야만 하고, 정부와 기업은 소비자의 안전 앞에 투명해야만 한다. 정부는 기업이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있고,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안전을 보증할 수 있는 독성시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만 한다. 또한, 기업은 제품에 들어있는 성분과 함께 주요 성분의 함량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공개해야만 한다. 독성을 결정하는 것은 노출된 농도이고, 기업 비밀은 소비자의 안전보다 중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기업이 제시한 사용방법을 철저하게 준수하며 사용해야만 한다. 오남용으로 인한 피해는 그 어떤 법으로도 보장받지 못한다. 의무와 권리는 반드시 공존해야만 한다. 실패의 원인이 해결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

◆박은정=경희대 의대 교수. 독성학 분야 세계 피인용 상위 1% 연구자다. 일상생활 속에서 노출될 수 있는 다양한 환경 중 유해물질과 질병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사회혁신유공 대통령 표창(2019), 홍진기 창조인상(2019)을 수상했다. 국가기술표준원 호흡기 안전성 데이터센터 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햇빛도 때로는 독이다』가 있다.

박은정 경희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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