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트렌드
트렌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가치를 반영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모호함을 밝히는 한줄기 단서가 되기도 하고요.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트렌드를 건져 올립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은 물론, 나아가 삶의 운용에 있어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지난해 젊은 층 사이 신드롬을 일으킨 국내 디저트 프랜차이즈는 ‘요아정(요거트 아이스크림의 정석)’입니다. 아이스크림에 50여 가지 토핑으로 취향에 맞춰 조합해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인기 비결이었죠. 소셜미디어(SNS)에 이른바 ‘꿀조합’을 추천하는 콘텐트가 우후죽순 쏟아지더니, Z세대 인기 음식 반열에 올랐어요. 2021년 99개에 그친 매장 수가 올해는 600호점으로 급격히 불어났어요(공정거래위원회). 본품보다 토핑이 브랜드의 성공을 견인한 대표적 예시죠.
사실 버블티와 마라탕 등 몇 년 사이 젊은 세대 사이 유행처럼 번진 음식엔 공통점이 있습니다. 소비자 개개인이 좋아하는 토핑을 선택해 나만의 메뉴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 특색있는 상품을 직접 완성하고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커스터마이징 문화가 식문화에서도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이죠. 이런 커스터마이징 시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소비자들은 더 색다르고 다양한 토핑을 얹는 식으로 ‘창의적 소비’를 선호합니다. 남과 똑같은 것은 지양하고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걸 즐기는 이들이 늘었다는 뜻이죠.
“똑같은 건 싫다”, 색다른 개성 표현 욕구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발간한『트렌드 코리아 2025』는 이런 모습을 ‘토핑경제’라고 정의합니다. 상품이나 서비스의 본질적인 부분보다 추가적이거나 부수적인 요소인 토핑이 더 주목받아 새로운 경제 효과를 창출한다는 시장의 변화를 의미해요.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연구팀은 “최근 소비자들은 제조사가 제공하는 여러 요소를 다양하게 조합해 자기만의 최적 조합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넣고 빼기 손쉬운 모듈형 토핑을 활용해 상품을 그때그때 변형하는 것을 즐긴다”고 했어요.
패션 분야에서는 관련 아이템의 성장세가 두드러져요. 티셔츠에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의 와펜을 붙이고, 가방에는 키링(열쇠고리)을 달아주는 등 일상의 평범한 아이템도 나만의 스타일로 꾸미는 식이죠. 신한카드 소셜분석 데이터에 따르면 옷, 가방 등을 꾸밀 수 있는 재료를 판매하는 ‘와펜숍’의 신한카드 지난해 1∼10월 이용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98% 늘었어요. 브랜드에서도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소비자 맞춤형 서비스를 확대 중이에요. 지난해 7월 휠라는 업계 최초로 개인 취향과 족형을 고려한 테니스화 커스텀 서비스를 선보여 러닝족(달리기를 즐기는 사람)의 관심을 끌었죠.
이제 토핑경제는 식품을 넘어 패션, 전자·가전 등 여러 산업군에서 발생하고 있어요. 앞서 책은 다이슨이 지난해 9월 출시한 음향기기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온트랙’을 그 대표 사례로 꼽았어요. 이 헤드폰은 2000가지 이상의 색 조합이 가능한 커스터마이징을 지원하면서도, 이어쿠션과 이어캡 역시 7가지 스타일과 마감재로 구성해 선택 폭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답니다.
어떤 ‘일상템’이든 커스터마이징화
표준화한 기성품과 남다른 걸 선호하는 흐름은 ‘의외의’ 시장에서도 엿볼 수 있어요. KT&G는 지난 2022년 전자담배기기 ‘릴 에이블’을 선보였는데, 기기당 한가지의 전용 스틱 종류만 사용할 수 있었던 기존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에서 차별화를 뒀어요. 총 세 가지 카테고리의 스틱 여섯개와 두 개의 흡연 모드를 디바이스 하나로 이용할 수 있게 한 결과,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전용 스틱 판매량은 같은 해 6월 대비 20% 이상 늘었답니다.
SNS 숏폼이 트렌드 이끌고, 기업은 변한다
이처럼 시장을 점령한 토핑경제 트렌드는 왜 부상했을까요. 업계에선 사람들이 SNS 숏폼 콘텐트에서 ‘내시피 (나의+레시피)’를 공유하는 문화가 퍼진 영향이라고 진단합니다. 가령 지난해 11월 한 유명 유튜버가 버거 프랜차이즈 불고기, 새우 버거에 데리야키 소스를 추가해 먹는 조합을 추천한 영상은 조회 수 약 430만회를 달성하며 버거 매출 상승을 견인했다고 해요. 이를 두고 롯데리아 관계자는 “개인마다 선호하는 맛과 재료가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재료를 추가하거나 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어요.
토핑경제 키워드를 제시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측은 “앞으로 기업이 다양한 토핑 생태계를 구축해 소비자가 상품을 재해석하고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제공해야 한다”고 설명했어요. 토핑 생태계는 고객이 상품을 단순히 구매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구매한 이후에도 계속 해당 브랜드를 찾고 소비하게 만들어야 ‘인게이지먼트(소비자들의 반응과 참여율)’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토핑'을 얹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