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정부가 치솟는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한 고강도 대출 규제 정책 내놓은 가운데 그 다음 스텝인 ‘공급 확대’ 카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도심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가 향후 주택 공급 대책의 핵심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정책이 당장의 집값 상승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 비선호 지역부터 순차적으로 시행하고, 이주 시기도 공급계획을 뒷받침하는 등 세심하게 정책을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거 문재인 정부에서 시도했던 공공 재건축·재개발, 도심복합사업 등을 복기해 실패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6월 넷째주 기준 올해 서울 아파트값의 누적 상승률은 3.1%로 나타났다. 부동산원은 매주 발표하는 주간아파트가격동향 자료를 통해 목동·여의도·반포·잠원 등 주요 재건축 추진 단지들 중심으로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과 거래량 증가가 두드러졌다고 여러 차례 분석했다. 재건축이 활발한 서초구와 양천구의 올해 누적 상승률은 각각 7.14%, 4.14%에 달했다.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는 정권을 막론하고 주택 가격 안정화 대책으로 꾸준히 제시돼왔다. 이미 수요가 집중된 주요 도심 지역에 직접 공급을 촉진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지금처럼 신규 분양을 통한 주택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재건축·재개발은 당장은 집값 상승의 재료 역할을 하며 불을 당길 수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주택 수요에 맞는 공급을 촉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서울의 주택 노후화도 재건축·재개발이 활성화돼야 하는 이유로 거론된다. 부동산 R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수는 임대 주택을 제외하고 현재 171만1444가구에 달한다. 이중 입주 30년을 초과한 노후 아파트는 28.54%에 해당하는 48만8457가구다. 특히 노원구(62.37%)와 도봉구(59.56%) 등에서는 노후 아파트 비중이 높아 주거여견 개선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된다.

정비사업 활성화, ‘집값 상승 불씨’ 될 수도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재건축·재개발이 특정 계층에만 이익이 돌아간다는 지적이다. 단기적으로 집값이 상승하는 충격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조정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은 “정부가 용적률 상향 등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완화해, 조합원들에게 분담금을 적게 걷으면 결국 공사 비용 충당을 위해 분양가가 높아져 사회적 부담이 증가한다”면서 “개발사업자와 해당 주민에게만 특혜를 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과거 연구들에 따르면 정비사업을 통한 주택 공급 혹은 공급 정책이 인근 아파트값을 단기적으로 상승시키고, 주택 가격의 변동률을 심화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2023년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박사수료 배영곤과 강창덕 교수는 ‘정비사업에 의한 주택공급이 인근 아파트 가격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서 흑석3재정비촉진구역이 ‘흑석 자이’로 재개발하면서 인근 500m 위치한 300세대 이상 아파트단지의 가격 동향을 추적한 결과, 정비사업이 진행될 떄마다 아파트 가격이 출렁였다.

조합설립인가 전후부터 가격 상승세가 시작됐다. 이 시기 500m 인근 아파트 단지들은 1~1.5㎞ 떨어진 다른 단지와 비교할 때 1㎡당 가격이 약 53만원이 높았고, 관리처분계획인가 전후에는 46만원이 높았다. 정비구역에서 생긴 이주 수요가 주변 아파트 가격을 높인 것이다. 반면 준공단계에서는 오히려 재정비구역 인근 아파트 가격이 다른 단지보다 72만원 더 낮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비사업 초기에는 가격이 오르다가 준공 이후에야 안정화되는 모습을 보인 셈인데, 문제는 준공까지는 통상 10~15년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이에 장기적 관점에서 공급 대책을 마련하더라도, 당장의 충격을 고려해 재건축·재개발의 단계적 규제 완화, 이주 대책 마련 등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논문 저자들은 “‘주택가격안정화’를 위한 주택공급 정책은 사업의 시기별로, 공간의 범위별로 효과가 다름을 고려하여 수립돼야 한다”면서 “이주시기를 순환적으로 유도하는 방안 등을 제시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변세일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현재 1기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 선정 이후 이주 대책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로, 지금 상태에서 사업이 추진되면 해당 지역 인근의 가격이 크게 상승할 것으로 우려된다”면서 “재건축·재개발로 인한 이주 계획에 동반되는 공급계획이 따라주지 않으면 집값 불쏘시개 역할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와 활성화로 사업성이 좋은 지역으로만 정비사업이 쏠릴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택 양극화는 이미 현재 진행형이다. 서울시 정비사업 정보 안내 사이트인 정보몽땅을 보면, 현재 운영 중인 재건축 사업장 264개 중 40.16%에 해당하는 106개가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강남 3구에 위치했다. 한강 이남에 몰린 사업장은 전체의 67.05%인 177개에 달했다.
변 연구위원은 “높은 용적률, 낮은 사업성으로 재건축 과정에서 조합원이 분담금을 내더라도 강남처럼 시세차익을 크게 거둘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으로만 사업이 쏠리는 구조”라면서 “이 경우 전체적인 도심 주택 공급으로 이어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말기 시도했던 공공 재개발 사업, 도심 복합 개발 사업 등의 실패를 복기하며 멸실로 인한 주택 가격 상승을 방지하는 정비사업 활성화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건축·재개발이 불러올 양극화의 함정을 벗어나기 위해 지역별로 순차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양지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자칫 잘못하면 정비사업 규제 완화가 강남 특혜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서울 외곽이나 경기도 등 집값 상승세가 상대적으로 덜한 지역부터 순차적으로 규제 완화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