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을 매겨야만 하는 어른들
어른들에게 편승하는 기자들
[디지털포스트(PC사랑)=이백현 기자] 유명한 심리학 연구 중 하나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똑같은 일을 시키더라도, 그에 대한 금전전적 보수가 덜 지급된다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의미를 더 부여하기 위해 애쓴다고요(인지부조화 실험, Festinger & Carlsmith, 1959).
지급되는 월급이 똑같고, 업무강도도 비슷하다면, 사람들은 대개 자부심을 가질 만한 직업을 선호한다고도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왜 하냐면… ‘글쓰는 직업’은 대체로 박봉이고, 기자도 예외가 아니거든요. ‘먹고 살려면 딴 길도 많은데, 왜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기자는 아마 저뿐만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라는 직업은 정치인하고도 꽤 닮은 점이 많습니다. ‘엉뚱한 길로 빠지긴 쉽고, 일을 제대로 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하는 일에 비해 실질적인 보수가 크게 주어지지 않으니 딴 길로 새는 경우가 많고, 일을 제대로 한다고 보상이 주어지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똑같은 수준의 일을 해내도, 업계·대기업·권력과 같은 편에 섰을 때와, 반대편에 섰을 때의 차이는 꽤 극명하죠. (반대편에 서는 것이 반드시 옳은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그렇습니다.)
결국 정치인이든 기자든, 딴맘 안 먹고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할 수록 ‘이 일을 왜 계속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주기적으로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일의 의미라도 찾아야’ 동기부여가 된다는 거죠.
해서 기자도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던 와중에, 어릴 적 읽었던 생텍쥐페리의 명작 동화 ‘어린 왕자’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어린왕자에는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로 시작하는, 아주 유명한 문장이 있죠.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문장은 ‘기자들은 숫자를 좋아한다’고 바꿔 써도 전혀 문제될 게 없더군요. 어린 왕자에서 말하는 ‘어른들’과 똑같이 사고하고, 글을 쓰는 존재가 기자거든요.
해서 이번 뉴스레터의 제목이 ‘기자들은 왜 어린 왕자와 반대로 말할까’가 되었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생각해 본, ‘기자가 어린 왕자와 반대로 말해야 하는 이유’를 적어봤습니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새로운 친구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그 애 목소리가 어때? 어떤 놀이를 좋아해?’라고 묻지 않는다. 대신 ‘몇 살이니? 몇 형제니? 아버지는 얼마를 버시니?’ 하고 묻는다.
그래야만 그 아이를 알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른들에게 ‘분홍빛 벽돌로 된 집을 보았어요. 창문에 제라늄 화분이 놓여 있고 지붕 위에 비둘기가 앉아 있었지요’라고 말해도, 그들은 그 집이 어떤 모습인지 상상하지 못한다.
그저 ‘그 집은 얼마짜리냐?’ 하고 묻는다.
그래야 비로소 집을 알았다고 여긴다.
'어린 왕자'를 다시 들여다봐도, 기자들에게 이 부분은 꽤 아픈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나이, 연봉, 매출, 집값과 같은 수치는 매체에서 제일 좋아하는 숫자들이거든요.
어제 제가 쓴 기사만 해도 ‘일부 게임사 개발자·실무자 보수가 대표이사를 뛰어넘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런 숫자에 관한 기사는 자극적이고, 어른들의 흥미를 끄는 데다가,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죠. 숫자는 뉴스의 파급력과 뉴스가 다루는 대상의 입지를 한눈에 드러내는 데 유용합니다. ‘매출 100억짜리 회사’와 ‘매출 1조 회사’는 주는 느낌이 다를 뿐더러, 회사의 ‘체급’을 쉽게 알 수 있게 해 주니까요.
어린 왕자에서 비판하는 대상은 모든 것의 ‘급’을 재려고 하고,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알았다는 태도를 가진 ‘어른들’입니다. '어른들’은 회사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살피기보다 매출, 영업익과 같은 숫자에 집중합니다. ‘어른들’은 학생이 어떤 분야에 탐구심과 호기심을 갖췄는지를 파악하는 대신 등급·백분율에 관심을 갖죠. ‘어른들’의 시각으로 보면 세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과학 연구의 중요성과 의의를 깊게 살피는 대신, ‘경제효과 1000억짜리 연구’라는 설명 하나로 만족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기자들은 이런 '어른들'을 어떻게 대할까요? 기자들은 모든 것에 ‘급’을 매기는, 어른들의 습성에 쉽게 편승합니다. 지난 뉴스레터에서는, 빅테크 AI 수장들이 사람들의 미래기술에 대한 막연한 불안·기대에 편승한다고 말씀드린 바 있는데요. 사실 기자들도 남말할 처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불안·혐오·열등감에 가장 쉽게 편승하는 사람들이 기자죠.
기자에게 가장 1차적으로 요구되는 자질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만한 소식과 화제를 발굴하고, 이를 글로 표현하는 능력입니다. 만약 ‘어른들’이 불안·혐오·열등감을 자극하는 소식에 관심을 갖는다면, 기자들은 그런 소식을 기사로 써야만 합니다. 사람들이 '급'을 쉽게 잴 수 있는 글을 원한다면, 기자는 그러한 것을 써 내야 합니다. 그렇지 못했던 언론사·기자는 이미 경쟁에서 도태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른들’이 한눈에 ‘급’을 알아볼 수 있는 기사를 원한다면, 기자들은 이에 편승할 수밖에 없습니다. 매체들이 너도나도 자극적인 제목을 쓰는 이유는, 스타트업들이 사업을 설명하며 ‘AI’라는 글자를 하나라도 더 넣으려고 기를 쓰는 이유, PC 업계가 너도 나도 ‘AI PC’를 쏟아내기 시작한 이유, 게임업계에 ‘리니지라이크’가 범람했던 이유, 웹툰 플랫폼에 양산형 웹소설 원작 웹툰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했던 이유, 하다못해 애니메이션 업계가 소위 ‘이세계물’을 쏟아내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언론사에서는 명시적으로든 그렇지 않든 조회수·트래픽을 더 끌어들이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골몰합니다. ‘좋은 제목을 다는 능력'은, 좋은 기사를 쓰는 능력과 동일하게 취급받을 정도로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기사를 쓴들, 읽히지 않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자극적인 제목으로 관심을 모으는 것’만이 기자 업무의 전부였다면, 기자(제)가 이런 글을 쓰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글 쓰는 직업은 보수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기자 업무란 게, 제대로 일하려면 생각보다는 만만치 않고요. 늦든 빠르든, 기자라는 직종은 나름대로 자신이 종사하는 일에 대한 의의를 찾아내지 않으면 허탈감에 빠지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엔 문득 돌이켜본 '어린 왕자'의 비판이 매우 아프다 보니, 이걸 한번 더 곱씹게 됐습니다. 기자로서 살아남기 위해 '숫자에만 관심있는 어른들'에게 반드시 편승해야 한다면, 이것에서 어떤 의의를 찾아낼 수 있을까요? 어른들의 관심을 끄는, 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쓰는 데에서 무슨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고민하다 보니, 이걸 한번 뒤집어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왕자와 정반대로 생각하는 '어른들'의 관심을 끌어모아서, '어린 왕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이를테면 ‘경제효과 1000억 짜리 연구’라는 제목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과학 연구가 뜻하는 바를 깊게 들여다볼 수 있을 겁니다. ‘3년 만에 영업익 2배로 뛴 이 회사’라는 문구로 이목을 끈 뒤에도, 이 회사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말해줄 수 있을 겁니다.
여기에 더해 꼭 돈이 되는 연구가 아니라도, 숫자에서 눈에 띄는 회사가 아니라도, ‘어른들’의 시선을 잡아끌 만한 무언가를 발견해서 제목에 놓아둘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어른들이 ‘분홍빛 벽돌로 된, 창문에 제라늄 화분이 놓여 있고 지붕 위에 비둘기가 앉아 있는 집’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 수도 있겠죠. ‘아이들의 목소리는 어떤지, 어떤 놀이를 좋아하는지’에도 귀를 기울이게끔 할 수 있을 겁니다.
‘어른들’의 관심을 끌어다가, 바람직한 곳에 놓아두는 일. 모든 것에 ‘급’을 매기고, 불안·혐오를 담은 소식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불쌍한 어른들의 시선을 끌어다가, 관심이 선한 영향력으로 환원되는 일에다가 놓아두는 일. 그게 기자의 업무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일이 기자의 이익, 나아가 기자가 소속된 언론사의 이익과 반드시 배치되지도 않을 테고요. 지금의 언론 환경에서도, 개개인의 기자가 그정도는 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공식적인 보상'이 적다 보니, 이를 대신할 직업적인 이상을 한번 그려본 것입니다. 어떠한 업계이든, 직업윤리의 실천이 오로지 개인의 신념에 의존해야 한다면 불행한 일이고요.
이러한 맥락에서 만약 저희 대표님이 이 글을 끝까지 보신다면, 소속된 기자가 받는 보수에 대해서 진지하게 한번 고민해 보시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현명한 결단이 소시민의 삶, 중소기업, 작금의 언론 환경, 나아가 사회·국가에 공헌하는 일로 이어지지 않을까요?
아마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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