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중동 학살의 공범”… ICC 제소 당한 이탈리아 총리

2025-10-08

법학 교수, 변호사 등 50여명이 고발장 접수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 미적대자 고강도 압박

멜로니 “유례 없는 모함… 어처구니가 없다”

이탈리아 정부의 총리와 주요 부처 장관들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를 당했다. 고발장에 적시된 사유는 “중동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을 방조한다”는 내용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탈리아 정부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인 가운데 당장 대(對)이스라엘 정책에 변화가 생겨나긴 어려울 전망이다.

최근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과 동등한 독립 주권 국가로 인정한 영국·캐나다·프랑스와 달리 팔레스타인 인정을 미루고 있는 이탈리아는 친(親)이스라엘 일변도 정책을 펴는 미국과의 공조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7일(현지시간) 로이터,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날 국영 텔레비전 방송사 RAI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가자 지구에서의 대량 학살에 공모한 혐의”로 ICC에 피소된 사실을 공개했다. 멜로니가 이끄는 연립내각의 귀도 크로세토 국방부 장관, 안토니오 타야니 외교부 장관은 물론 이탈리아 최대 방산업체인 레오나르도 그룹의 최고경영자(CEO) 로베르토 친골라니 회장 또한 피고발인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멜로니는 누가 자신들을 고발했는지에 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AFP 통신은 “고발장은 지난 10월 1일자로 ICC에 제출됐다”며 “법학 교수와 변호사, 기타 사회 저명 인사 등 50명 넘는 인원이 고발장에 서명했다”고 소개했다. 이들은 고발장에서 “이스라엘 정부는 특히 치명적인 무기 공급을 통해 이스라엘 정부를 지원함으로써 팔레스타인 주민을 상대로 진행 중인 대량 학살과 심각한 전쟁 범죄 및 반인도적 범죄에 공모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앞서 ICC는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자행한 집단학살 등 전쟁 범죄를 조사해 처벌해달라”는 몇몇 국가 정부의 요청에 따라 수사에 착수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등 이스라엘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ICC에 의해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멜로니는 고발장에 대해 “세상에 이런 모함도 없을 것”이라며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2023년 10월 7일 이후 이탈리아가 이스라엘에 대한 새로운 무기 공급을 승인하지 않았다는 점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CEO가 고발을 당한 레오나르도 역시 대변인을 통해 ‘이스라엘군을 위한 치명적 무기 공급’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꼭 2년 전인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기습해 민간인 약 1200명을 살해하고 250명 이상을 인질로 붙잡아 자기네 근거지인 가자 지구로 끌고 갔다. 이에 이스라엘은 ‘복수’를 선언하고 군대를 동원해 가자 지구를 공격했다. 2년간 이어진 전쟁 기간 어린이와 여성을 비롯해 6만7000명 넘는 팔레스타인 주민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고발은 다분히 이탈리아 정부의 대이스라엘 정책 전환을 노린 일종의 압박으로 풀이된다. 영국·캐나다·프랑스 등 다른 서방 주요국과 달리 이탈리아는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과 대등한 국가로 인정하길 거부한다. 이는 독일도 마찬가지이나 그래도 독일 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 금지라는 강경책을 시행 중이다.

이를 두고 대외 정책에서 이탈리아·미국 양자 관계를 최우선시하는 멜로니가 친이스라엘 입장이 확고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의식해 이스라엘을 감싸는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3일 이탈리아 시민들은 “대학살을 중단하라”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로마, 나폴리, 밀라노, 토리노 등 29개 지역에서 적어도 40만명 넘는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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