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노인성 안질환…초기 땐 녹내장 약물치료 먼저
백내장, 수정체 뿌옇게 변해 시력 저하
녹내장, 안압 높아져 시신경 손상시켜
백내장 말기로 일상 지장 땐 수술부터
고위험군 40% 이상 안압 높아져 주의
녹내장 수술 땐 반년 지나 백내장 치료
둘다 심할 땐 ‘동시수술’… 회복은 더뎌
# A(71)씨는 최근 몇 달간 눈이 침침한 느낌이 계속돼 집 근처 안과를 찾았다. 검사 결과 백내장과 녹내장이 모두 나왔다. 의료진은 백내장 수술부터 먼저 할 것을 권했다. A씨는 “노안으로 생각하고 ‘눈물약’만 받으러 병원에 갔다가 두 가지 질환이 한 번에 나와 당황했다”며 “주변에서는 녹내장이 더 위험하다고 하는데, 의료진은 백내장 수술을 먼저 권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백내장과 녹내장은 대표적인 노인성 안질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관심질병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백내장 환자 수의 82.9%가 60대 이상이었다. 녹내장 역시 60대 이상 환자가 전체의 57.0%를 차지했다.
하지만 고령에서 많이 발생한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 두 질환은 원인과 진행, 치료법에서 차이가 크다.

◆수정체와 안압… 원인 달라
백내장은 빛을 집중시켜 망막에 선명한 영상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수정체가 뿌옇게 변해 시력이 흐려지는 질환이다. 외상, 당뇨병, 스테로이드 장기 사용 등이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주로 나이가 들면서 수정체 단백질 변형으로 혼탁해지면서 발생한다. 특히 낮에는 시야가 뚜렷하지만 야간이나 어두운 곳에서 시력이 더 나빠지는 경향이 있다.
반면 당뇨병 망막병증, 황반변성과 함께 ‘3대 실명 질환’으로 불리는 녹내장은 안압이 높아져 시신경이 손상돼 발생한다. 눈 속에서는 물과 같은 안구내액(방수)이 생성된 후 각막과 홍채 사이의 배출구를 통해 눈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이때 배출구가 막히거나(폐쇄각 녹내장), 배출구는 정상인데 배출이 원활하지 않으면(개방각 녹내장) 안압이 높아지게 된다. 정상 안압은 10㎜Hg∼21㎜Hg. 이보다 높아지면 시신경에 압력이 가해진다. 초기에는 증상이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야 주변부부터 점점 좁아지고, 결국 시력을 잃게 된다. 안압 상승과 고령, 고혈압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종진 김안과병원 녹내장센터장은 “노인 질환인 백내장과 녹내장이 동시에 발견되는 것은 흔한 일”이라며 “두 질환은 원인이 다르기 때문에 치료 방법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백내장은 수술이, 녹내장은 약물치료가 대부분이다. 다만, 진행 정도와 종류에 따라 치료 순서와 수술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둘 중 어떤 치료가 우선?
같은 부위에서 발생한 서로 다른 질환이라 환자들은 질병의 상호작용에 대해 걱정하게 된다. 녹내장은 백내장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백내장이 심한 환자가 뒤늦게 병원에 와서 수술하면 안압을 올리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다행히 최근에는 이렇게 악화한 상태로 병원에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단 두 질병이 모두 초기인 경우, 녹내장 약물치료를 우선으로 하는 것이 좋다. 녹내장의 90%는 약물치료로 해결되며, 심각한 10% 정도만 레이저나 수술 치료를 한다. 백내장에 사용되는 약물은 치료보다 진행을 지연시키는 게 목적이다.


정 센터장은 “백내장 지연 약물을 사용하더라도 치료의 종착역은 ‘수술’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지연 효과도 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급행을 타냐, 완행을 타냐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녹내장이 초기인데 백내장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면 백내장 수술을 먼저 하게 된다. 녹내장 환자라고 하더라도 혼탁해진 수정체를 제거하고 인공수정체를 삽입하는 백내장 수술법은 동일하다. 다만, 녹내장 환자가 백내장 수술을 받으면 일반인보다 안압이 올라갈 확률이 높기 때문에 수술 후 안압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정 센터장은 “백내장 수술 자체로 녹내장의 위험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보통 환자는 백내장 수술 후 안압 상승 위험이 높게는 10% 정도 나오는데, 고위험군에서는 40% 이상”이라며 “고위험군에는 녹내장 외에도 고도근시, 수술 합병 등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안압이 아주 높은 환자의 경우 백내장 수술 전 예방적으로 안압을 낮추는 치료를 하기도 한다.
백내장 수술을 하는 김에 녹내장 시술을 하기도 한다. 백내장 수술 시 안압을 조절할 수 있는 미세 스텐트를 물이 빠져나가는 길에 함께 삽입하면서 안구내액 배출을 돕는 것이다. 다만 정 센터장은 “이는 안압을 더 낮춰야 하는 환자에게 필요한 조치로, 모든 환자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반대로 초기 백내장과 ‘말기’ 녹내장으로 녹내장 수술이 필요한 경우 녹내장 수술 후 최소 6개월이 지난 뒤에 백내장 수술을 시행하는 것이 좋다. 백내장 수술 후에는 염증반응이 나타나는데 이 염증반응이 녹내장 수술 후 치료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녹내장과 백내장이 모두 심한 경우라면 ‘동시 수술’을 진행할 수도 있다. 개방각 녹내장처럼 ‘물길’이 열려 있지만 제대로 배출되지 않으면 인위적으로 고여 있는 안구내액을 빼내는 수술을 한다. 작은 구멍을 뚫는 레이저와 달리, 이때는 회복 시간도 길고 감염 위험도 높아 입원이 필요하다.
정 센터장은 “백내장과 녹내장이 모두 심각하면 수술을 한 번에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폐쇄각 녹내장’에 한해서는 백내장 수술만으로도 안압이 떨어질 수 있어 백내장 수술을 먼저 하기도 한다”며 “안압이나 진행 속도, 녹내장 종류 등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기 때문에 전문의 상담을 잘 받아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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