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북 10곳에서 동시다발한 영남 산불이 ‘역대 최악’의 산불로 기록됐다. 27일 현재 불에 탄 면적은 3만6000㏊에 이르러, 지금껏 가장 넓었던 2000년 동해안 산불 2만3794㏊를 훌쩍 넘어섰고, 하루하루 새 기록을 써가고 있다. 지리산·주왕산 국립공원까지 화마가 할퀴었다. 이날도 의성의 통일신라시대 불상이 전소됐고, 국내 최대 송이 생산지인 영덕 국사봉의 소나무 숲도 산불이 집어삼켰다. 경북 영덕 산불 진화 작업에 투입된 A씨(69)가 숨진 채 발견돼 지난 21일 산청 산불 발화 후 엿새 만에 사망자가 27명으로 늘었다. 이 숫자도 1987년 산불 인명 피해 집계 후 가장 많다.
산불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중단된 ‘여·야·정 협의회’ 개최에 공감하고, 추가경정예산 편성에도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산불로 타버린 집·과수원·축사 등 생활기반시설을 복구하고 이재민 지원, 방재 인력·체계와 낙후한 소방헬기나 진화 장비 개선까지 뭉칫돈 들어갈 곳이 한둘이 아니다. 기후변화로 대형 산불 빈도·크기가 커지는데, 허점이 노출된 예방·진화 대책을 근본적·획기적으로 다시 세워야 한다. 탄핵 정국에서 반목만 해온 정치에 영남 산불이 추경·협치의 마중물이 된 모양새다.
하지만, 지금도 추경은 말 따로 행동 따로 덜컹거리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예산안 심사 때 삭감된 정부의 재난 예비비 2조원 복원을 요구하고, 민주당은 예비비보다 정부 관련 예산에서 쓸 수 있는 돈을 먼저 투입하고 산불 추경을 하자는 방향이다. 정부는 여·야·정 국정협의회에서 추경 시기·규모 등 가이드라인을 달라며 추경안 편성을 미루고 있다. 피해 주민들은 연일 확산하는 산불로 속이 타들어가는데, 지금 서로 고집만 부릴 때인가. 여야와 정부는 기싸움을 멈추고 추경 편성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추경은 속도가 중요하다. 가뜩이나 계엄 정국과 경기 한파로 민생 위기도 깊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이날 공개한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벌이는 줄고 빚은 늘어 채무 상환 능력이 낮은 ‘취약 자영업자’가 지난해 말 42만7000명으로 집계됐다. 올 들어 폐업한 자영업자도 20만명에 달한다. 추경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야 할 시간과의 싸움이다. 여·야·정은 시급한 민생 위기 대응과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한 추경을 조속히 짜서 집행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