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봄, 어떻게 ‘적응’할까

2025-03-30

지난 1월 7일 시작된 미국 LA 산불은 1월 말에야 완전히 꺼졌다. 우리나라 통영시 정도의 면적(2만3000㏊)이 불타고 60명가량이 사망 또는 실종됐다. 금전으로 환산하면 400조원이 넘는다.

많은 전문가가 LA 산불이 커진 원인을 기후변화에서 찾는다. 불은 기온·습도·연료라는 조건이 맞으면 타오른다. 여기에 바람이 가세하면 빠르고 널리 퍼진다. 지난해 초, LA에는 큰비가 내려 수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하지만 5월 이후 비가 거의 오지 않았다. 수풀은 그대로 말라죽어 불쏘시개가 됐다. 때마침 ‘산타애나’라는 강풍이 불면서 작은 불씨가 최악의 참사가 됐다는 것이다. 이런 과학적 분석은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어류 보호를 위해 댐의 물을 다 흘려보내 제대로 불을 끄지 못했다”는 음모론보다는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영남 산불, 3월인데 역대 최대 피해

기후변화 영향, LA 산불과 닮은꼴

대책은 이미 세웠는데 실천이 문제

불이 다 꺼진 뒤 캐런 배스 LA 시장은 크리스틴 크롤리 소방국장을 전격 해임했다. 배스 시장은 지난해 1760만 달러(약 260억원)의 소방예산을 삭감해 산불 대응 능력을 떨어뜨리고, 산타 이네즈 저수지를 보수한다며 비워둬 소방전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 사태를 초래했다는 비판에 시달려 왔다. 하지만 그는 산불 발생 첫날 1000여 명의 소방관을 퇴근시켰다는 이유로 책임을 소방국장에게 돌린 것이다.

대형 산불이 잦아지는 환경은 기후변화가 초래하지만, 피해 규모는 초기 대응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기후변화는 사기”라는 트럼프의 신념은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모든 것을 기후변화 탓으로 돌리는 것도 무책임하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한번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50년 이상 사라지지 않고 온실효과를 낸다. 당장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어도 지구의 온도는 당분간 꾸준히 오른다. 그에 따른 태풍과 홍수, 가뭄과 산불, 해수면 상승과 식량 부족 등의 악영향도 필연적이다. 그렇다고 마냥 기후변화만을 탓하며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변화하는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기후변화 적응’이 탄소중립만큼이나 중요한 이유다.

LA 산불 당시 국립산림과학원은 ‘산불의 연중화’라는 특징을 짚어내며 우리도 비슷한 일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석 달 뒤 영남 지역에 그대로 실현됐다. 이 지역은 지난겨울 강수량이 극도로 적었고 일사량은 월등히 많았다. 마침 2주 전 바짝 추웠다가 갑자기 28도에 육박하는 순간 불씨가 튀었다. 소백산맥을 넘으며 더 뜨겁고 건조해지는 바람을 타고 불씨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모습이 LA 산불을 똑 닮았다. 30명이 숨지고 경북에서만 4만5000㏊가 탔다. LA 산불 피해를 훌쩍 뛰어넘었다.

2011년 이후 정부는 국가 기후위기 적응 강화 대책을 5년 단위로 세워오고 있다. 올해가 3차 계획 마지막 해다. 산불 항목의 세부 계획을 살펴봤다. 의외였다. 공중특수진화대 증설, 임도 확대, 산림 솎아내기, 드론과 대형 헬기 확보, 대용량 살수차 도입 등 요즘 논의되고 있는 대응책은 빠짐없이 언급돼 있었다. 문제는 계획은 좋은데 진척은 더디다는 점이다. 특수진화대는 목표(1200명)의 3분의 1 수준인 460명에 그치고, 대용량 헬기는 여전히 돈이 없어 사지 못한다. 공군수송기에 물탱크 달기는 국방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드론은 기술 요구 수준을 못 맞춰 번번이 유찰됐다.

반면에 대피와 구조의 문제는 대책에서 아예 빠져 있다. 불이 번지는 속도가 예측과 경보 체계를 뛰어넘자 통신망이 두절되고, 그렇지 않아도 움직이기 어려운 어르신들이 고립되는 사례가 속출했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이유다.

산불은 이제 시작이다. 4~5월이 첫 고비다. 어쩌면 연중 걱정해야 하고, 내년에도 반복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계획을 충실히 이행하고 미흡한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 불이 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어도, 대규모 피해를 막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기후위기의 시대, ‘적응’ 전략은 가장 적극적인 대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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