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의 열쇠, 기술 동맹

2025-09-03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전황은 영국에 매우 불리했다. 영국군은 5월 말 됭케르크에서 기적적으로 철수했지만, 프랑스는 독일에 항복했다. 런던은 연일 독일 공군의 공습에 시달렸다.

9월에는 독일·이탈리아·일본이 삼국동맹 조약을 맺고 공세를 강화했다. 서유럽 대부분이 독일에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영국이 의지할 곳은 대서양 건너 미국뿐이었다.

미국은 참전을 주저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에 참전했다가 10만 명이 넘는 전사자를 낸 기억이 아직 생생했다. 전쟁의 상처에 지친 미국인은 당시 참전을 결정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민주당에 반감이 컸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대공황(1929~1939)이 오기까지 민주당은 대선에서 내리 3연패 해 백악관은 계속 공화당 차지였다. 1932년 집권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조차 국민의 고립주의 성향을 무시하기 어려웠다.

영국 윈스턴 처칠 총리는 비상한 결단으로 고립주의의 벽을 넘었다. 대영제국이 보유한 최첨단 군사기술을 미국에 넘겨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영국 과학자 헨리 티저드가 비밀리에 미국을 방문해 고성능 레이더, 제트엔진, 원자력 연구 자료, 암호 정보를 통째로 넘겼다. 일명 ‘티저드 미션’이다.

영국의 진심 어린 제안에 미국이 움직였다. 1941년 3월, 미 의회는 무기대여법을 통과시켜 동맹국에 무기와 물자 공급의 길을 열었다. 막강한 산업력을 보유한 미국은 영국이 제공한 기술을 적용해 폭격기 성능을 개선하고 제트엔진을 개발했다. 원자폭탄 개발을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에도 착수했다. 티저드 미션을 계기로 영국과 미국은 전략적 동맹을 다졌다. 영국의 기술과 미국의 생산력이 시너지 효과를 낳아 전세를 역전시켰다. 단기적 이익보다 장기적 안보를 택한 처칠의 결단력과 루스벨트의 호응이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미국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140척 이상의 항공모함을 건조했다. 하지만 압도적 조선 능력을 자랑하던 미국의 영광도 서서히 저물었다. 이제 함선 건조는커녕 유지·보수도 쉽지 않다. 현재를 전시 상태로 바라보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함선의 노후화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최근 우리 정부의 한·미 선박산업 글로벌 얼라이언스 ‘마스가(MASGA)’를 통한 윈윈 제안은 신의 한 수다. 반도체 등 전략산업 투자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하고 미국은 안보·경제 울타리를 제공하는 새로운 동반관계의 구축에 나섰다. 한·미 협력이 21세기판 티저드 미션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역사는 기술 동맹이 어떻게 패권 경쟁에 작용하는지 이미 한 차례 보여준 바 있다.

김성재 미 퍼먼대 경영학 교수·『관세 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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