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경쟁국의 경제를 옥죄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이미 예고한 대로 중국은 물론이고 우방국인 멕시코, 캐나다에도 관세 폭탄을 터트렸다. 대통령 선거 유세 기간 내내 관세(tariff)란 단어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 그의 말을 실행한 것이다.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앞세워 더 강한 미국 중심주의와 경제 내셔널리즘을 향해 가고 있다. 미국을 부강국으로 만들어 위대한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대통령의 포부를 누가 말리겠는가. 그러나 이웃 국가들의 사정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일방적인 조치에 여러 나라가 큰 위협을 느끼고 있다.
이에 대항하여 EU 국가들도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한층 더 강화하고 있다. ‘MEGA(EU를 다시 위대하게)’를 구호로 내세운다. 중국과 일본도 자국 산업의 보호를 위한 장벽을 쌓고 있다. 모든 국가가 방어 전략에 골몰하고 있다. 너도나도 ‘우리나라만을 위대하게(MOGA; Make Only my country Great Again)’를 외친다면 지구촌은 치열한 경제 전쟁터가 될 것이다. 그 결과 어느 나라도 위대한 번영을 성취하기는커녕 상호의존적 세계 경제 생태계가 와해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설령 ‘자국 우선주의’로 미국이 더 부강하게 되더라도, 그것이 곧 미국이 더 위대한 나라가 된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위대함’에는 약자를 내 몸과 같이 보듬고, 배려하며, 사랑하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군사적 부강이 위대한 국가로 인정받는 필요조건일 수는 있으나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부강함=위대함’의 방정식은 언제나 작동되는 것이 아니다.
‘자국 이기주의’는 비이성적 판단의 산물이다. 다른 나라의 사정은 무시하고 자국의 이익만을 고집하면 세계시장은 약육강식의 난장판이 된다. 이웃 국가가 죽어가도 우리만 괜찮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의 비이성적인 상황으로 치닫는다. 이것은 결국 자국의 이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다른 나라의 행복도 빼앗는 자타 공멸의 형국으로 이어질 것이다. 2기 취임 기념으로 촬영한 트럼프 대통령의 프로필 사진을 보라. 분노와 불안 그리고 적개심으로 가득 찬 듯한 그의 언짢은 표정에서 비이성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기업 경영에서도 오직 돈과 같은 저급한 감정만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다. 그러한 감정은 오히려 초점을 기업 내부로 향하게 만들어서 현실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공생(共生)의 기반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로버트 그린은 ‘인간 본성의 법칙’에서 잘못된 결정이나 오판의 원인은 바로 뿌리 깊은 ‘비이성적 경향’이라고 주장했다. 이성적인 사람이 되려면 근본적으로 우리 자신이 비이성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경계해야 한다.
초강대국인 미국의 최고지도자가 유치원생도 아는 공생의 원리를 왜 모를까. 미국 경제가 도탄에 빠진 것도 아닌데 우방국가와 적대국을 가리지 않고 미국 최우선주의를 고집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자본’이라는 국정철학을 견고히 유지하고 있는 탓이다. 그 결과 모든 정책 의사결정의 최우선 순위를 미국의 이익에 둔다. 1992년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외친 빌 클린턴 캠프의 선거 구호와는 전혀 결이 다르다. 경제적 부강만을 철저히 신봉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은 성급하고도 무례하게 여겨진다.
남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매너도 없이, 성급했던 정치지도자들은 언제나 위대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위대한 지도자는 철저히 신중하고 박애(博愛)하는 자세를 지녔다. 예수보다 무려 4백 년 전의 사람인 묵자는 겸애편(兼愛篇)에서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같이 하라(愛人若愛其身)”고 했다. 겸애란 무차별적·이타적 사랑이다. 겸애의 실천은 어렵다. 그러나 서로가 이롭게(交利) 되는 방향으로 생각하면 겸애도 그리 힘든 일은 아니다. 재물이 아니라 겸애를 갖춘 지도자와 국민이 위대한 나라를 만든다.
이번 설 명절은 유난히도 길었다. 여유롭게 덕담을 나누었고 충분한 쉼을 가졌다. 큰 사고 없이 연휴가 끝나서 정말 다행이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이번 설 명절 인사도 ‘복 많이 받으세요’가 대세였다.
유감스럽게도 ‘복’은 물질적 부유함에 대한 열망이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복의 의미가 철저히 ‘재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요즘 인기 선물인 반짝이가 박힌 황금색 해바라기 그림이나 금색 찬란한 소나무 그림에도 온통 돈에 대한 욕망이 가득 차 있다. 국가 지도자뿐만 아니라 개인도 오로지 ‘부유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듯하여 안타깝고 씁쓸하다. 부유함도 좋지만 먼저 배려와 겸애의 자세로 돌아가자. 그래야 부강함을 뛰어넘는 위대한 삶을 산다고 자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