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코기라 생각했던 돈가스에 물컹한 비계가 씹혔다. 옆 사람이 입에 넣었다가 몰래 컵에 버린 소주를 물로 생각해 마신 적이 있는데, 그때 기분이었다.
나는 돼지고기 비계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삼겹살도 지방이 너무 많으면 먹지 않는다. 그런데 돈가스 조각 속 비계는 고기의 절반쯤 됐다.
나가노 현 나카 가루이자와 골프장 식당에서 일어난 일이다. 골프장은 오거스타 내셔널처럼 아름다웠다. 이런 곳에서 큼지막한 비계를 넣었다면 이유가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계속 씹긴 했다.
오물거리다 보니 바삭한 튀김옷과 야들야들한 살코기, 부드러운 비계의 조합이 괜찮았다. 특히 비계에서 흘러나온 고소한 육즙의 여운이 좋았다. 운전을 해야 하지 않았다면 나마비루(생맥주)를 한 두 잔 마셨을 것이다.
일본 골프장에서 돈가스는 거의 실패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고 가끔 먹었다. 일본 고급 식당의 돈가스는 두텁고 비계가 고스란히 붙어 있다. 그냥 붙어 있는 정도가 아니다. 한국은 삼겹살 비계를 위한 돼지를 육종한다는데 일본 가고시마 등 일부 지역에선 돈가스 등심용 지방이 많은 돼지를 키운다고 한다.
돈가스는 일본 근대화의 상징이자 서양 음식 일본화의 대표적인 메뉴다. 대중적인 요리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골프장 메뉴에 돈가스는 너무나 많았다. 돈가스뿐 아니라 가스동, 카레가스, 가스산도(돈가스 샌드위치), 히레(안심)가스, 꼬치돈가스 등 가스투성이다.
일본 여행 전문가인 주성진 테라투어 대표는 “일본 골프장 레스토랑에 돈가스 메뉴가 없는 곳은 없다. 돈가스의 가스는 발음이 승리와 같고 일본인들은 골프 9홀이 끝난 후 후반 9홀을 준비하면서 승리를 상징하는 돈가스를 즐겨 먹는다”고 했다.
일본 골프와 돈가스의 관계에 대한 가설은 매우 흥미로웠다. 그러나 발음 때문에 돈가스를 먹는다는 정도론 근거가 좀 빈약했다. 일본인을 포함, 몇 명에게 물어봤는데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닐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