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울산] 갑을계약과 다단계 하청구조에서 ‘납품대금 연동제’가 무슨 의미?

2024-11-07

2023년 1월 납품대금 연동제 관련 법률이 공포되고 시범운영과 계도기간을 거쳐 올해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시행 이후 한 해가 마무리되는 현재 납품대금 연동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중소기업 경영 상황에 어떠한 변화가 있는지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납품대금 연동제’란 수탁기업(하청)이 위탁기업(원청)에 납품하는 물품의 원재료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 변동하는 경우 그 변동분에 연동해서 납품대금을 조정하는 제도다. 10% 범위 내에서 협의한 후 비율을 정할 수 있다. 이 제도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한다.

울산지역의 대표 산업인 자동차 산업과 조선산업 역시 수많은 중소기업이 원청과 하청 관계로 구조가 이루어져 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의 경우 복잡한 하청구조로 인해 납품대금 설정이 기업 경영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복수의 자동차 부품 제조기업 담당자에 따르면 "외장재 등 수시로 제품에 변동이 있는 경우 납품대금이 2~3년 기준으로 비교적 빠르게 반영되는 편이나 엔진이나 차량 내부 부품과 같이 제품이나 기술에 큰 변동이 없는 경우 10~15년째 동일한 납품단가를 적용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납품대금 연동제 시행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부분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대개 납품대금으로 근로자 인건비를 포함한 대부분의 경영 자금을 충당한다. 최저임금은 매년 오르고 있으나 납품대금은 몇 년째 변동이 없는 수준이라 적자를 벗어나기 힘들다. 자력으로 다른 제품을 추가 개발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경영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나마 자체적으로 연구 개발할 수 있는 여력이 되는 기업은 이런 대처라도 가능하지만 다수의 기업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납품대금 연동제를 무력하게 만드는 요인은 또 있다. ‘다단계 하청구조’다. 원청에서 1차 협력사로 납품대금 연동제를 반영한 납품단가를 지정하더라도 1차 협력사에서 2차 협력사로, 3차 협력사로 넘어오는 과정을 거치면 단계별 관리비를 제한 금액을 책정받게 된다. 사실상 납품대금 연동제가 무의미한 것이다. 또한 위·수탁기업은 갑을관계다. 갑을관계에서 ‘납품대금 연동 협의가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동등하지 않은 관계에서 금전이 오가는데 합리적인 협의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시행 1년을 맞이하고 있는 현재 납품대금 연동제를 정상적으로 적용하고 정착되게 하려면 어떤 해법이 필요할까? 먼저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모니터링·감사·실태조사가 수반되어야 한다. 수많은 기업에서 요구하는 원재료 가격 변동분 외에 최저임금 인상률 적용이 가능한지에 대한 논의도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법과 제도가 현실과 괴리되면 안 하니만 못한 결과를 낳게 된다.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공직자 역시 형식적인 절차만 강조하며 책임을 회피하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 무슨 득이 있을까?

중소기업 역시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독자적인 제품 개발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역량을 갖추지 못한 기업에 대해서는 연구개발비 지원과 절차 간소화가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유사한 정책에 있어 지원 절차에 필요한 서류와 행정 처리에 지쳐 포기하는 기업이 부지기수다. 정책 명분이 충분하다 하더라도 절차가 복잡하면 이 역시 안 하니만 못한 사업이 된다. 이에 대한 컨설팅을 포함해서 각 기업이 특화할 수 있는 기술 개발 자문 등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자동차 산업은 울산의 대표 산업이다. 친환경 연료에 관한 산업전환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2026~2027년 사이에 실시될 EU의 ESG 공급망 실사 준비도 갖춰야 할 시기다. 산업 환경의 여러 변화가 예고된 지금 지역 내 중소기업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지역경제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모든 산업은 자본을 기반으로 유지·성장한다. 기업 경영의 핵심은 인력과 기술이다. 납품대금 연동제가 무력화되면 자동차 산업은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까? 자동차 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구조가 무너진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지원을 준비해야 할 때다.

양진보 나은내일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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