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물은 건강하고, 약은 안 먹는 게 좋다”는 한국인들의 착각

2025-03-19

잘 정제된 알약이 과일 챙겨먹는 것보다 비타민 공급 측면에서 나아…자연식품으로 비타민D 보충은 사실상 불가능

약의 합성물질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원소들로 만들어져…알레르기 유발·독성물질 함유 등 오히려 자연이 위험할 수도

먹고 먹히는 관계 속, 진화는 무작위적으로 발생…계획·의도 갖고 엄밀한 실험 거친 문명의 산물 받아들여야

대표적인 건강 음식으로 인식되는 과일. 그러나 비타민 공급만 따진다면 잘 정제된 비타민 알약 하나가 과일 챙겨 먹는 것보다 훨씬 낫다. 2022년, 학술지 ‘네이처 식물’에는 유전자 가위 기술로 비타민D3를 함유한 토마토를 개발한 결과가 발표되었다. 즉 자연적인 토마토는 비타민 공급원으로서 부족하다는 뜻이다. 토마토를 제외하고도 사실 자연에서 비타민D를 보충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버섯에 포함된 비타민D2는 효과가 너무 낮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대개의 비타민 알약은 D3다. 한국 성인의 대다수가 비타민D 부족 또는 결핍 상태이며, 전 세계적으로는 10억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합성된 약은 가급적 안 먹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반면 자연이 제공하는 것은 거의 다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식품이나 화장품에 자연, 천연, 유기농과 같은 말을 붙이고 있으면 값이 올라간다. 여기에는 두 가지 착각이 존재한다. 첫째는 약이라는 것은 인공물질로서 근본적으로 자연적인 것과 다르다는 선입견이다. 사실은 약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자연의 원소들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합성물이나 천연물이나 모두 화학물질로서 그 경계 자체가 불분명하다. 단지 그러한 특정한 조성이 지금까지 자연에서 발견되었느냐 아니냐일 뿐이다. 둘째는 자연 그 자체는 순수하고 건강한 자원을 제공한다는 생각이다. 이것도 착각이다. 일례로 알레르기의 주된 요인은 모두 자연이다. 꽃가루, 동물의 털, 진드기와 함께 가장 빈번한 원인 중 하나가 음식물이다. 우유, 달걀, 견과류, 콩, 밀, 생선, 갑각류 등이 알레르기를 유발하는데 땅콩 알레르기 같은 경우 사망을 초래할 정도로 위험하다. 식중독도 있다. 날로 먹는 고기나 해산물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지만, 자연에 존재하는 수십만 종의 식물 중에서도 사람이 먹고 탈나거나 죽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일부 아몬드와 사과, 체리, 복숭아, 살구 등의 씨에는 아미그달린이라는 성분이 있는데 이것이 몸에 들어가 대사가 되면 청산가리가 된다. 우리나라에는 흔치 않지만 세계 여러나라에서 주식으로 먹는 카사바에 들어있는 리나마린 역시 청산가리로 변하기 때문에 과량을 날로 먹으면 중독될 수 있다. 그래서 카사바는 껍질을 벗기고 한동안 물속에 담가 놓았다가 고온에서 쪄서 먹어야만 안전하다. 헤마글루티닌은 많은 콩과식물에 천연적으로 존재하는 독성 물질로서 적혈구 세포가 응집되게 한다. 붉은 강낭콩은 4알만 날로 먹어도 소화기관의 내벽이 손상되어 메스꺼움, 구토, 설사, 그리고 장이 뒤틀리는 고통이 따라온다. 80도 정도의 온도에 노출되면 독성이 약 5배 증가하기 때문에 어설픈 가열은 금물이다. 반드시 끓는 물로 10분 이상 끓여야 한다.

감자를 햇볕에 오래 노출시키거나 오래 보관하면 표면이 초록색으로 변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부분에는 솔라닌이라는 독성 물질이 생긴다. 감자의 싹에도 들어있는 솔라닌은 구토, 설사, 위경련 및 신경학적 문제 등을 유발하며, 심할 경우 호흡곤란을 일으키므로 다량 섭취하면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식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일부 버섯들도 매우 강한 치명적인 독성을 가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식물이 동물에게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 혹은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모두가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경쟁하는 곳이 자연이다. 식물 역시 동물에게 먹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며, 독성은 바로 그러한 방안 중 하나다. 어떤 경우 식물들은 독성을 실시간으로 만들어내며 주변에 경고 신호를 전달하기도 한다. 단풍나무의 경우 곤충의 공격을 받으면 유독성 페놀과 탄닌 성분을 만들어내며 휘발성 물질을 배출해 주변 나무에게 신호를 보내 미리 방어 물질을 합성하게끔 돕는다.

아프리카 사바나의 아카시아 나무도 기린에게 잎이 먹히기 시작하면 단 몇분 만에 맛이 없는 물질을 내보내 스스로를 보호할 뿐 아니라 가스를 발생하여 주변에 위험을 알린다. 우리 삶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식물의 방어 전략은 마늘이나 양파를 썰거나 해서 상처를 내면 분비되는 매운 성분이다.

동물들 역시 그대로 당하지는 않는다. 아카시아의 맛이 없어지기 시작하면 기린은 먹던 나무에서 움직여 다른 나무를 향해 가는데 이때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거슬러 움직인다. 가스 물질이 바람을 타고 가는 터라 그렇게 움직여야 아직 경고를 받지 못한 나무의 잎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간에는 수많은 효소들이 있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독성 물질들을 변형시키고 몸 밖으로 배출되도록 돕는다. 인체 내에서 가장 큰 장기가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천연물에 존재하는 수많은 독성 물질에 노출되었기에 이에 대한 강력한 진화적 압력이 작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식물에 존재하는 독성 물질들은 대개 쓴맛을 가지고 있으므로 사람들이 쓴맛을 싫어하도록 진화한 것 역시 타당한 결과다. 인간이 장내세균과 공생하며 진화한 이유 중 하나 역시 여러 미생물들이 천연 음식물에 들어있는 해로운 물질들을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진화라는 과정은 자연의 대규모 생체실험과 같다. DNA에는 순전히 무작위로 돌연변이가 발생하며 이러한 변이를 가지고 태어난 여러 다른 개체들 중 잘 살아남는 것만 자손을 남긴다. 즉 우연히도 주어진 환경에 적합하게 작동하는 변이만 세대를 거쳐 계속 유지된다. 간에서 특정한 효소를 충분히 발현시키지 못했거나, 쓴맛을 회피하는 미각 시스템을 발달시키지 못했거나, 해독에 도움이 되는 미생물에게 좋은 장내 환경을 조성하지 못했던 인간의 선조들은 살아남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기에 그들이 지닌 변이는 점차 감소하며 사라져갔다.

이러한 ‘음성선택’ 현상을 집단유전학에서는 ‘정화선택’이라고도 부른다. 마땅치 않은 변이를 제거하여 집단을 정화시킨다는 잔혹한 진화의 논리를 잘 표현하는 말이다.

반대로 유리한 변이는 점차 집단 내에 퍼져가는데 이러한 ‘양성선택’ 역시 인간의 음식물 섭취와 관련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유당 소화능력이다. 우리가 갓난아기일 때는 유당분해효소가 생산돼 우유 속에 들어있는 젖당(유당)을 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젖을 떼고 나면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이 효소의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그런데 낙농업이 발달한 북유럽의 사람들은 90% 이상이 성인이 되어서도 이 효소를 발현할 수 있게 하는 변이를 가지고 있다. 최근 ‘네이처’에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기근과 전염병이 만연하여 우유와 유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극도로 높았던 시대에 이 변이가 매우 빠른 시간 안에 확산된 것으로 생각된다. 침 속에 있는 아밀라아제의 경우 전분 소비량이 높은 집단에서 해당 유전자(AMY1)의 복제본 수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고기를 씹을 때 필수적인 턱 근육 유전자 MYH16의 기능을 강화시키는 변이는 불이 요리에 사용되기 전까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양성선택과 음성선택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이런 유리한 변이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생존경쟁에서 뒤처져 유전자를 물려주지 못한 것이다.

사람들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인체의 복잡성이나 생명의 다양성에 압도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 뒤에는 무려 40억년이라는 진화의 역사가 있다. 생존을 위해 진화한 인간의 두뇌는 순간적인 변화와 움직임을 빠르게 잡아낼 수 있지만, 시간의 흐름과 역사를 개괄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기억 속에서 과거의 순간순간을 스냅샷처럼 꺼내오는 것은 잘할 수 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신의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재구성하여 펼쳐보는 것은 매우 어렵다. 자신이 경험한 몇십년도 어려운데, 무려 40억년이라는 시간은 좀처럼 감을 잡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과학이 밝혀주는 자연의 원리에 신비라는 것은 없다는 점이다. 우연과 우연이 영겁의 시간 동안 반복된 결과일 뿐이다.

맹목적인 자연과 달리 문명은 지성을 가지고 계획과 의도에 따라 발전한다. 오늘의 주제인 약을 예로 들어보자. 잘 알려져 있듯이 신약의 개발과정은 길고 험난하다. 과학자들은 먼저 질병의 원인이 되는 타깃을 선정한 후 다양한 실험과 데이터를 통해 생물학적으로 검증한다. 이후 선정된 타깃을 제어하는 물질을 찾기 위해 수십만에서 수백만개의 화합물을 스크리닝하여 유효물질과 선도물질을 도출한다. 그런 다음 우리 몸이 어떻게 이 물질을 흡수·배출하고 반응하는지, 독성은 없는지 등 다각도의 연구가 진행된다. 다양한 구조 변화를 통해 타깃과의 결합을 최적화하고 동물실험을 통해 생리적인 효과와 안전성을 평가하는데,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끊임없는 조정을 거친다. 이렇게 도출된 후보물질은 이제 4단계에 걸친 임상시험의 대상이 된다. 1상에서는 소수의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안전성을 확인한다. 2상에서는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본격적으로 효능을 평가하고 최적의 용량을 결정하게 된다. 3상은 가장 규모가 큰 임상시험 단계로서 다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유효성을 확보하고 기존의 약들과 비교하거나 병용하는 효과까지 확인한다. 3상을 거치면 시판이 되지만 판매 후에도 신약이 제대로 안전하게 작동하는지 검증하는 4단계가 있다.

안전한 약을 만들기 위해 거치는 이러한 엄밀한 임상시험은 맹목적인 자연의 실험과 전적으로 대비된다. 이제는 인공지능마저 신약 개발에 합류했다. 만약 인간에게 40억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문명은 어디까지 발달할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하다.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문명의 보호막 아래에 있는 온실 속 화초라는 사실을 종종 망각한다. 자연을 감상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문명의 통제 속에서나 가능하다는 사실 말이다. 누군가 모든 문명을 뒤로하고 날것의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면, 몇시간 내에 그 사실을 피부로 깨닫고 불과 며칠 안에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감자의 독성을 몰랐던 초기 유럽인들은 감자를 먹고 탈이 나는 경우가 많아 감자를 악마의 음식이라고 불렀다. 자연의 무자비한 생체실험 대상으로 고통스럽게 죽어간 수많은 인류의 선조들은 그러한 말을 남길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니 근거 없는 자연 숭배는 그만하고 동료 인간들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해온 문명의 산물에 감사하며 살아갈 일이다. 한마디로 음식은 되고 약은 안 되는 이유 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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