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과 글의 풍경
한성우 지음 | 알렙 | 304쪽 | 1만8000원
의사들의 알 수 없는 의학용어는 ‘전문가의 용어’로 용인된다. 하지만 공사장에서 쓰이는 ‘공구리(concrete)’ ‘데파(taper)’ 등 일본식 단어들은 터부시된다. 왜 어떤 말은 ‘원형 그대로’도 괜찮지만, 어떤 말은 ‘순화’되어야 할까.
방언과 말소리를 연구하는 국어학자인 저자는 엉터리 같은 외래어도 한국의 고유한 언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세꼬시’의 순화어 ‘뼈째 회’가 있지만 듣기에도 말하기에도 ‘세꼬시’가 편하고, 훨씬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순화는 부자연스럽고, 쉽게 일상에 물들지 못한다. 양식에서 구운 고기 요리를 ‘스테이크’라고 칭하는 것처럼 ‘세꼬시’도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책은 ‘언어 경관’ 연구를 통해 우리 삶을 비추는 단어들을 톺아본다. ‘언어 경관’이란 지역과 장소의 특성을 드러내는 말과 글이 보여주는 경관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 분야다.
상점의 간판, 낯선 사투리는 물론 ‘버카충’ ‘후루꾸’ 같이 사회적으로 꺼리는 단어들도 연구 대상이다. 제주도, 어시장, 탄핵 집회 현장, 당구장, 중국집, 공사장 등 다양한 공간의 경관을 설명하는 단어들을 살펴본다.
저자는 “언어는 시간이 흐르며 변화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북한이 어문 규정을 강요해도 찾아오는 변화를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방언이나 어휘도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과정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이기 때문에 ‘순수함’보다 ‘소통’을 우선으로 생각하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각종 외래어와 신조어에서 비롯된 한글의 위기에 대해서는 다르게 보자고 제안한다. 뜻을 담는 그릇인 한글이 올바르게 잡혀 있다면, 삶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한국어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바른 말 고운 말을 쓰자는 태도는 좋으나 그것이 모든 한국어를 좀먹을 것이라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