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일송 시인은 1981년 1월 1일 어느 신문에 '목숨의 노래'라는 시를 발표했다. ‘ㅡ 병든 세월일랑 한 칼에 잘라내어/ 일렁이는 불씨의 아침을 맞는/ 전라도 쟁기꾼들이여…’라고. 그 시를 읽고 남녘의 농부들을 생각했다. ‘쟁기꾼들이여!’라는 시행이 머릿속에 강하게 입력되었다. 나는 농부의 아들 쟁기꾼 자손으로 이 땅에 왔다. 죽는 순간까지도 이 진실과 운명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고 싶지 않았다. 착한 농군(農軍)의 아들이란 자존심으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운명의 길에서 몸부림칠지언정 원망 없이 가자고 마음 다잡았다. 그랬는데 내 나이 젊음에서 멀어지다 보니 조금 흔들리고 있다. 세상이 기계화와 경제에 치중되다 보니 쟁기꾼은 가라 경운기가 왔다. 아니 경운기도 꺼져라 트랙터가 왔다. ‘너도 가라 AI가 농사고 뭐고 다 할 것이다’는 세상 속에 갇히고 말았다.
젊어서의 일이다. 사는 게 힘들고 비위가 상하면 전라선 완행열차를 타고 여수 순천 쪽으로 떠났다. 완행열차 안 사람들은 소박하고 순진했다. 잘 살지는 못해도 자기 삶을 원망하지 않았다. 착한 쟁기꾼 후손으로 고단해 보여도 누구를 탓하지 않고 살아가는 백성의 모습 그대로였다. 섬진강 따라 서서히 달려가는 느림보 기차의 걸음은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창 밖 풍경은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착하고 복된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산이요 강이요 들녘이었다.
3월에는 교회에서 원로 분을 모시고 안 박사와 윤 회장이 운전하면서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를 찾아갔다. 평사리의 최참판 댁은 서희와 길상이의 애틋한 사랑이 깃든 곳이다. 영화 ‘토지’는 김수용 감독, 김지미 이순재 김희라 허장강이 출연한 1974년 작품이다. 최참판 댁 외양간에는 큼직한 암소가 있었다. 꼭 실물 같은 암소요 송아지였다. 순하게 생긴 암소가 서서 머리를 디밀고 있는 형상이 보기에 좋았다. 그곳을 지나 뒷길 대나무 숲길을 걸어가는데 소 울음소리가 제법 들을 맛이었다. 발길 멈추고 고개 돌려 소 있는 곳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박경리 선생은 박완서 작가가 의과대학 다니던 아들을 잃고 밥도 못 먹고 있을 때 원주로 불러서 ‘밥을 안 먹으면 죽는다’고 입을 쥐어박으며 기어이 밥을 먹도록 했다고 한다. 선생은 1946년 결혼하여 50년, 6·25 사변 때 남편과 사별한 입장이었다. 그런 그는 언젠가 그랬다. ‘아들 낳고 딸 낳고 남편 뒷바라지와 살림에 매달리면서 언제 글을 쓸 수 있겠느냐’고. 홀로 살아가면서 오로지 작품 활동에만 전념했다는 뜻이었다.
2008년 어린이날 돌아가신 그는 서울에서 강원도 원주로 원주에서 진주여고로 운구차가 이동하는데 그 뒤를 잇는 수많은 조문객 행렬이 당시의 화제 중 화제였다. 사위인 김지하 씨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한국인의 어머니요 작가로서 문학적 큰 영혼의 소유자이었기에 가능한 일었을 것이다. 딸 김영주는 2008년 6월 15일 '버리고 갈 것 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선생의 유고 시집을 내며, 서문에서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았고 남아 있는 모든 기운을 사르면서 남기신 39편의 시를 모아 책으로 엮었다고 했다.
나는 수필문학 강의를 할 때마다 이 시집 속 '옛날의 그 집'이란 시 중 마지막의 “모진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내용을 소개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진안군 백운면 신원리 팔공산 ‘데미샘’은 섬진강의 발원지로써 광양만 바다까지 500여 리를 남쪽으로 흐른다. 강물은 흘러가면서 자연과 인간의 삶을 살찌우고 있다. 3월의 그날 최참판 댁 옆 박경리 선생 문학관 앞에서 작달막한 체구에 안경을 걸치고 책을 펴 들고 서 있는 그의 동상을 경건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문학관에서는 선생의 체취며 영혼을 대하듯 살펴보았다. 점심은 하동읍 신기에서 먹었다. 그때 나는 창 밖 나뭇가지에서 매화를 만나 인사를 나눴다. 식사가 끝난 뒤 일행은 화개장터로 향했다. 그 순간 바라보던 섬진강은 맑고 여리시 푸르렀다. 강물은 내게 말했다. ‘강은 흘러 바다로 가고, 인생은 마침내 죽음으로 가는 것. 물이 그릇을 따르듯 살라고, 그러나 움트기 직전 나무처럼 온몸으로 밀어 올리는 힘을 잊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