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섭 경사노委 위원장
‘계속고용’ 방안 놓고 노사 입장차 극심
연공급·이중구조 따른 韓 특수성 감안
선택지 많이 주거나 연착륙 유도 필요
1월 토론회 열어 공익위원 대안 마련
정치적 불확실성 속 소통 요구 더 커져
참여 중단 선언 노동계 복귀 서둘러야
대화 성과는 위원장 개인의 역량 아냐
노사정 주체들 결단이 새 역사 만들어
“이번 정치적 위기는 대화와 타협의 부재, 소통의 부재에서 나온 것이죠. 노동계가 잠시 사회적 대화를 중단하고 있지만 지금 더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권기섭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원장은 3일 노동계의 사회적 대화 복귀를 촉구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정년연장을 포함한 계속고용 논의 필요성이 커졌으나 지난달 비상계엄 사태로 이를 논의할 ‘노사정 사회적 대화’는 가동을 멈췄다. 한국노총이 당분간 모든 경사노위 회의체에 참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면서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속에서 권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의 동력은 여전하고, 그 가치는 오히려 더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권 위원장은 한국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노사정이 타협을 이뤘다는 점에 주목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확산 때 노사정은 머리를 맞대 위기 극복의 발판을 마련했다. 권 위원장은 “노사정 대화가 기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라며 “최근 정치·경제적 불안정성이 크지만 이른 시일 내에 타협을 이루는 모습을 국민께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경사노위 테이블에 오른 의제 중 관심도가 가장 관심도가 높은 의제는 계속고용이다. 경사노위 내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계속고용위원회’는 지난해 6월 1년 임기로 출범했다. 지금까지 10차례 회의에서 노사 간 입장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났다. 노동계는 60세인 법적 정년을 일괄 65세로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고, 경영계는 임금 체계 개편이 수반된 선별적 재고용이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권 위원장은 1분기 안에 1차 결론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내내 크게 이슈가 된 만큼 원래는 2월까지 결론을 내려 했으나 타임스케줄에 차질이 생겼다”며 “이달 안에 토론회를 열고, 공익위원 대안을 마련해 3월 안에 최대한 대타협을 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권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계속고용 방법의 하나인 정년연장에 대해 노사 간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어떻게 조정할 수 있나.
“기본적으로 국민연금 수급 연령까지 고용을 연장해야 한다는 것은 원칙이고 당위에 가깝다. 모든 나라가 그렇게 하고 있다. 문제는 ‘대상’과 ‘방식’이다. 노동계는 일률적으로 ‘법적 정년연장’으로 정리하자는 것이고, 경영계는 전제를 달았다. 고용 연장 방식을 다양화하는 것에 더해 임금 체계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호봉제(연공급제)를 탈피하는 것 또는 그것을 깨는 것이다. 이 같은 입장들은 사실 변하지 않고 있다. 정리를 위해서는 공익위원들이 협상을 중재하기 위해 옵션을 던지는 방법이 있다. 공익위원들이 선택지를 주는 것이다. 중재안을 던지지 않으면 좁혀지기 어렵다. 동시에 공론화를 해서 양측이 협상의 레버리지(지렛대)를 가질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이달 열리는 토론회가 그 일환이다.”
―위원장님이 생각하는 방향은.
“우리 노동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연공급이 강하고 이중구조 문제가 있다. 이중구조는 대·중소 기업 간 격차문제다. 청년이 원하는 일자리, 즉 대기업 일자리는 적다. 이것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연공급제가 없고, 이중구조가 적은 나라에서는 정년폐지나 정년연장을 쉽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쉽게 그 길로 가지 못한다면 천천히 가든지 아니면 선택지를 많이 주는 방법을 쓸 수도 있다. 일본처럼 (기업과 노동자에게) 옵션을 많이 주고 연착륙하는 방안을 만들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단계적 시행안의 하나로 중소기업부터 적용하는 안이 거론된다. 정치권에서는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업 규모별 단계적 시행안을 제안했는데 합리적이라고 보는가.
“해당 안에 대해서도 경영계에서는 불만이 많다. 그렇지만 정년연장을 한다면 대기업과 공공부문이 뒤로 가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중소기업 적용 시기를 얼마큼 빨리할 것인지는 협상 등 논의를 해야 한다. 앞서 말한 대로 선택지를 재고용 등으로 열어놓으면 속도를 높여도 되고, 정년연장으로 단순화하면 천천히 해야 한다는 의미다. 계속고용의 방식(선택지)을 좁히면 연착륙하는 데 시간이 상당이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저출산 문제 해결의 핵심은 일·가정양립과 유연근무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중소기업의 근로 시간 문제가 풀리면 저출산 문제도 풀린다. 중소기업에서 유연근무가 활성화해야 한다. 그게 안 되는 근원적인 배경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얽혀 있어서다. 중소기업엔 대체인력이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외국 인력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본처럼 고령자 파견을 완전히 허용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 봐야 한다. 파견을 허용하는 방식을 이념의 문제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경사노위 내 일·생활 균형위원회에서 현재 근로 시간을 논의하지만, 대체인력 공급 방식도 같이 논의되길 바란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출산율이 획기적으로 늘긴 어렵다고 본다.”
―‘인공지능(AI)과 노동’을 주제로 한 연구회 발족에는 진척이 있나. 연구회가 만들어진다면 우선순위로 연구할 부분은 무엇인가.
“8일 ‘AI와 노동 연구회’를 발족할 계획이다. 크게 네 가지 분야로 AI 도입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AI 활용과 일하는 방식의 변화, 일자리 창출 및 근로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 개선방안, AI기술 교육 등 인재양성을 중점 연구할 예정이다. 특히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노동시장 이탈 계층에 대한 적극적 노동시장 대책 등 총고용이 유지 발전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집중할 생각이다.”
―취임 초 작은 합의라도 일단 합의를 이끄는 데 중점을 두겠다고 했는데 그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국 사회는 빅딜은 하기 어려운 사회가 된 것 같다.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다. 동시에 작은 합의가 중요한 이유는 합의의 경험이 있어야 대화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취임 뒤 가장 큰 성과는 공무원과 교원(노조)의 타임오프 기준 마련한 것인데 이 부분을 타결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봤다. 관료 출신 위원장이라는 우려를 빠르게 불식하려는 의지도 있었다. 노정 간 타결이긴 하지만 성과를 냈기 때문에 이후에는 본인들 책임으로 합의가 무산되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낄 것이라 본다. 또 어떤 사안에서는 합의보다 결단이 더 중요한데, 결단의 부담을 줄여주는 차원에서도 사회적 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이 늘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특히 정치권에서 비토(거부)가 난무하는 것에 국민이 피로감을 느끼면서 사회적 대화의 요구는 더 세졌다고 본다. 국회를 통한 사회적 대화 기구 설치 움직임이 있는데, 기구가 (어디 있는지가)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사회적 대화가 중요한 것이지 국회 직속이냐, 대통령 직속이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경사노위는 법으로 제도화된 기구다. 이미 있는 기구를 활용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동시에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는 사회적 대화 기구가 대통령 밑에 있는 게 맞고, 의원내각제에서는 국회에 있는 게 맞는 것 같다. 노사엔 빠르게 사회적 대화에 복귀해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더불어 쟁점 법안이나 갈등 이슈를 사회적 대화 기구를 통해 시한을 두고 논의하는 것을 명문화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경사노위에서 숙의하는 시스템을 만들면 좋겠다.”
―어떤 위원장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어떤 위원장’이라기보다, ‘어떤 사회적 대화’가 있었는지로 기억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역대 사회적 대화를 반추해 보더라도 사회적 대화의 성과는 위원장 한 사람의 개인적 역량이라기보다 시대 정신과 어려울 때 용기를 냈던 노사정 주체들의 리더십과 결단이 새로운 패러다임과 역사를 만들어냈다. 저성장, 인구구조 전환, 노동시장 이중구조, AI시대 대응전략, 기후위기에 따른 산업전환 등 현시대가 겪고 있는 위기에 노사정이 지혜를 모으면 지금의 사회적 대화는 미래세대에 기억될만한 좋은 역사가 되지 않겠나.”
권기섭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1969년 경북 예천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뉴욕주립대 경영학 석사 ●고용노동부 외국인력정책과장 ●고용정책총괄과장 ●고용서비스정책관 ●직업능력정책국장 ●대통령 일자리수석실 선임행정관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장 ●노동정책실장 ●산업안전보건본부장 ●고용노동부 차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2024년 8월∼)
대담=엄형준 사회부장, 정리=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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