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저널]이종호 기자= 7일 화목 토론은 ‘1987년 이후 노동운동의 유산과 과제’를 주제로 열렸다. 하부영 전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은 “1987년 노동조합이 설립되고 나서 1997년까지 10년 사이에 시급이 500원에서 2000원으로 4배 올랐고,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에 따른 경제적 분수 효과로 국민 소득도 3480불에서 1만3230불로 거의 4배 동일하게 인상됐다”며 “노동자들의 투쟁이 전반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쳤고,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이전까지는 대공장 노조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이 중소영세기업의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는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민주노총이 4대 보험을 전 국민에게 확대 적용하는 데 역할을 했다는 점도 성과로 짚었다.
이어 “1998년 이후 정리해고제와 비정규직 제도가 도입되고 신자유주의가 전면화하면서 10~12% 조직 노동자들은 체제 안으로 포섭하고 노조 밖 노동자들은 무한 착취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판이 바뀌었다”며 “민주노총에서 산별노조와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양날개론으로 대응했지만 둘 다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왜 실패했을까?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하는 문제를 노동조합으로 노사관계 안에서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부영 전 지부장은 “지불 능력이 없는데 차별과 격차를 어떻게 해소하느냐”며 “바뀐 판과 룰에 따라 우리도 방향으로 바꿨어야 했는데 그걸 못 했다”고 진단했다. 진보정당에 대해서도 “민주노동당을 만들어놓고 노동 중심성을 상실하고 분당되고 분열된 것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정치를 할 세력과 주체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부영 전 지부장은 “특수고용 플랫폼노동, 프리랜서 노동, 사각지대 노동자를 다 합치면 1784만 명으로 2900만 전체 취업자의 60.8%가 사장도 없는 0시간 노동자, 근로계약서도 없는, 노동자인지 아닌지 구분도 안 되는 노동자들”이라며 “기존의 노사관계나 노동조합 마인드로는 MZ 세대가 겪는 이런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정치를 통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노사관계나 노동조합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 잘못”이라며 “MZ 세대 불안정노동자들과 함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려면 노동운동은 노동정치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유기 전 금속노조 위원장은 “인사고과를 기준으로 임금 및 상여금을 차등할 수 없다”는 현대자동차 단체협약 54조와 비조합원이 되는 과장 진급을 거부한 현대차 남양연구소 대리들이 600명이 넘는다고 소개하면서 이 조항이 지켜지는 한 노동조합 조직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주야 맞교대에서 주간연속 2교대로 근무 형태를 변경하면서 연간 2700시간이던 노동시간이 1800시간으로 줄었지만 임금 수준은 그대로 유지됐다며 1987년 이후 38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런 성과를 낸 것은 유럽 노동운동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박 전 위원장은 노동운동이 100년의 역사를 이어간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방향으로 진전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대응하자고 덧붙였다.
박준석 전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장은 “대기업 노동조합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조직력과 재정이 있는데도 노조운동의 역량을 축적하고 지역사회와 전체 노동운동에 좀 더 많은 기여를 하지 못했다”며 “운동의 질적 전환을 위한 정책 연구나 간부 활동가와 조합원들의 의식적 전환을 위한 노력은 제자리걸음이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울산의 경우에는 노동조합이 시민사회단체보다 수적으로나 조직적으로 영향력이 크지만 지역사회를 성장시켜 나가는 데 자기 역할을 충분히 했는가 하는 지점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1987년에 태어난 최규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생기사업부 대표는 많은 일반직, 연구직 노동자들이 진급을 거부하고 조합원으로 남는 이유는 노동조합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라며 그 믿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아가면서 파업을 하고 투쟁을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정말 이게 옳은 행동인가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들이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2011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이태현 전진하는노동자회 사무국장은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기업별 노동운동에 갇혀서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면서 “초기업 교섭 법제화를 사회적 의제로 제시해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부영 전 지부장은 정부가 의지를 갖고 중간 착취를 금지하는 법 제도를 만들면 원청과 하청, 2차와 3차 비정규직 노동자 간 임금 격차의 70~80%를 해결할 수 있다면서 부족한 10%는 산별이나 업종별 초기업 단위 교섭으로 원청에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책임을 지우고, 공공부문부터 시행하자고 제안했다. 임금 격차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성과급 격차에 대해서는 2(임금) : 2(부품사 성과공유) : 2(주주) : 3(재투자, 연구개발) : 1(사회환원, 고객투자) 같은 성과(이익) 공유제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특히 성과연봉 직무급제나 저임금 장시간 노동 체계에서 설계된 연공서열제가 아닌, 고진로(하이로드) 전략의 노동조합 임금체계 개편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준석 전 본부장은 “민주노총이 시위 현장에 나선 2030 세대들에게 사회 대개혁의 과제를 제대로 제시할 수 있는 진보 운동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면서 “인공지능(AI) 시대에 AI를 공공재로 만들어가고 일자리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 대전환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규범 대표는 “젊은 세대들은 노동운동에 인생을 던질 생각은 솔직히 없다”며 “선배들은 그 오랜 세월 동안 노동운동을 왜 했느냐?”고 물었다. 이태현 사무국장은 “노동조합은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이타적인 것”이라며 “임금과 복지, 안전할 권리를 위해서도 노동조합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토론을 이끈 김형균 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정책기획실장은 “탄핵 정국에서 한남동 밤샘 농성 자유 발언을 새벽까지 들었는데 기성세대로서 후배 세대들에게 어떤 사회를 넘겨줘야 할 것인가 책임감이 크게 다가왔다”면서 “단순히 원하청 문제뿐 아니라 불안정노동자와 이주노동자 문제를 포함해 노동운동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사회 대개혁 차원에서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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