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경호처 직원들이 김성훈 차장과 이광우 경호본부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연판장을 돌리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700명 직원 중 상당수가 참여한 연판장에는 두 사람에 대해 ‘대통령 신임을 등에 업고 경호처를 사조직화했으며 직권 남용 등 갖은 불법행위를 자행해 조직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처장 직무대행 김 차장 등은 경호처가 윤석열 전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해 불거진 사병(私兵) 논란의 정점에 있다. 김건희씨 생일 깜짝 이벤트, 윤 전 대통령 부부 휴가지 폭죽놀이 등 경호와 무관한 업무에 빈번하게 직원을 동원해 조직의 자부심을 추락시켰다는 비판도 받는다. 윤 전 대통령 생일 파티로 변질된 경호처 창설 60주년 기념행사에선 “하늘이 보내주신 대통령…”이라는 봉건시대에나 어울리는 낯뜨거운 헌정곡이 울려 퍼졌다. 김 차장은 위법한 지시를 거부하고 체포영장 집행에 협조한 간부 등에 대해 보복인사를 한다는 잡음도 들린다.
수뇌부 몇몇의 일탈행위로 경호처의 핵심가치이자 구성원의 자랑인 ‘충성’, ‘명예’, ‘통합’의 정신이 땅에 떨어졌다. 미꾸라지 몇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리는 격이다. 김 차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경호처에 대해 “사병 집단이 맞다”며 “오로지 대통령을 위해 존재하는 유일한 정부기관”이라고 강변했다. 공채 출신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62년 역사의 조직과 구성원의 명예를 짓밟는 비뚤어진 공직관이다. 대한민국 어떤 조직이나 인원도 헌법과 법률을 초월할 수는 없다. 당국은 이들의 불법 혐의에 대해 엄정히 수사하고 사법부의 엄중한 판단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번 사태로 일각에선 경호처 폐지·경호 업무의 경찰 이관을 주장하나 위험한 발상이다. 경찰 권한 집중으로 이승만 시대의 부작용을 재현할 수 있다. 그보단 경호처가 최고수준의 경호 전문기관으로서 경호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 우선 기관장에 대한 내부 견제가 현실화할 수 있도록 감사 기능의 독립성이 강화되어야 한다. 또 12·3 당시 국군방첩사령부 법무실 사례처럼 법무 기능도 기관장의 단순 참모에서 벗어나 조직의 헌법·법률 준수 의지를 제고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외부 통제 수위도 높여야 한다. 우선 국회 국정감사나 상임위원회에 차장이 출석하는 잘못된 관행부터 시정해 처장이 직접 국민 대표 앞에서 감독을 받도록 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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