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 쫓은 게 패착이었다, ‘한국판 넷플’ 왓챠가 놓친 것

2025-08-12

미디어 프런티어: K를 넘어서

‘취향의 성지’ ‘데이터 기반 추천의 선구자’. 한때 한국 콘텐트 시장의 혁신 아이콘으로 불렸던 왓챠가 결국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했다. KAIST 학생이었던 박태훈 대표가 2911년 9월에 시작한 담대한 프로젝트가 14년만에 새 국면에 접어든 셈이다. 회생 절차라는 점에서 아직 생존을 위한 일말의 가능성을 부여할 수는 있으나, 그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아는 터다.

초기의 왓챠는 찬란했다. 영화 평가 및 추천 서비스 ‘왓챠피디아’에서 출발, 6억 개가 넘는 방대한 별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교한 추천 알고리즘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특히 독립·예술영화를 사랑하는 마니아들은 왓챠를 단순한 OTT가 아닌, 자신의 취향을 증명하고 소통하는 자부심의 상징으로 여겼다. ‘작지만 강한’ 플레이어였던 왓챠의 시작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단단함과 뾰족함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판 넷플릭스’라는 거대한 꿈을 좇기 시작하면서 그 단단했던 기반은 서서히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왓챠의 여정은 오늘날 우리에게 ‘성장’과 ‘본질’에 대한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성장이라는 독이 든 성배

왓챠의 비극은 역설적으로 거대한 자본에서 시작됐다. 누적 투자금 590억원, 전환사채 490억원. 1000억원이 넘는 자금은 왓챠에 달콤한 미래를 약속하는 듯했지만, 동시에 ‘규모의 성장’이라는 피할 수 없는 족쇄를 채웠다. 투자자들은 왓챠가 니치 마켓의 강자를 넘어 넷플릭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종합 OTT 플레이어로 거듭나길 원했다. 당시 스타트업 생태계를 지배하던 ‘스케일업(Scale-up)’ 담론 속에서 왓챠의 독보적인 데이터 기술력은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당시 한국 OTT 시장은 이미 거인들의 전쟁터였다. 넷플릭스는 막강한 자본력으로 오리지널 콘텐트를 쏟아냈고, 디즈니플러스의 상륙이 예고되는 등 글로벌 공룡들의 공습은 거세졌다. 국내에서는 티빙과 웨이브가 통신사와 방송사의 지원을 등에 업고 점유율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연간 수천억원대의 콘텐트 투자금이 필요했다. 왓챠는 자신의 체급에 맞지 않는 싸움에 뛰어들었고, ‘작지만 확고한’ 자신만의 무기를 버리고 모두가 탐내는 ‘규모’라는 신기루를 좇기 시작했다. 자본이 전략을 지배하는 순간, 왓챠의 정체성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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