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상반기 약세론이 종종 제기됐던 글로벌 테크·인공지능(AI) 플랫폼 시장이 하반기에 들어서는 매출 확대 가시성이 크게 높아진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급증하는 수요 대비 생산능력(캐파) 부족이 문제점으로 꼽히는 만큼 각 기업별 캐파 부족 해소 속도가 향후 개별 종목의 주가 향방을 가를 핵심 변수로 지목된다.
12일 오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심지현 신한투자증권 해외주식팀 애널리스트는 “관세·과도한 설비투자(CapEx) 필요성에 대한 의구심에도 미국 정부와 빅테크의 대규모 투자와 파트너십이 지속되고 있다”며 “시장 내 자금 유입 여력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올해 두 차례 실적 시즌을 거치는 사이 기업들의 가이던스가 상향됐다는 것이다.
심 애널리스트는 AI가 ‘추론 확장’ 단계로 들어서며 연산·데이터 수요가 오히려 커지고 있다고 봤다. 효율 개선에도 사용량이 더욱 증가하는 이른바 ‘제번스의 역설(Jevons paradox)’이 작동하면서, 캐파 부족 현상이 발생하게 됐고, 빌링스(고객 청구 총액), RPO(남은 계약 이행 금액), 백로그(주문 후 미처리 물량) 등 미반영 지표가 빠르게 불어나 향후 매출로 이전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다만 고성능 연산 장비가 제때 구축되지 못해 생산능력 부족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것은 여전히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심 애널리스트는 AI 에이전트 확산이 기업 간 경쟁을 한층 치열하게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AI 에이전트는 사용자가 목표를 제시하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다른 소프트웨어·데이터베이스와 연동해 업무를 처리하는 자율형 인공지능을 말한다. 과거에는 고객관계관리(CRM)나 데이터 분석 등 각자의 전문 영역이 뚜렷했지만, AI 에이전트의 등장으로 이제는 서로의 분야를 넘나드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상장사뿐 아니라 비상장 유니콘 기업까지 경쟁에 뛰어들면서, 기존처럼 비슷한 업종끼리만 비교해선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고 봤다. 그는 또 시장에 사모자금이 풍부해지면서 상장 대신 인수·합병으로 끝나는 거래가 많아지고 있다며, 이런 흐름까지 감안해 유니콘 기업까지 포함한 밸류체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밖의 시장 리스크 요인으로는 소송과 규제 등 외부 변수들이 지목됐다. 단순히 부과되는 벌금 규모보다 이런 이슈가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기업가치(밸류에이션)를 낮추는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다. 심 애널리스트는 “빅테크 기업들이 과거보다 외부 변수에 훨씬 민감해졌다”고 말했다.
심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섹터별로는 △클라우드는 하이퍼스케일러뿐 아니라 세컨티어·신생 기업까지 수요가 확산되고, 과금 방식 다변화로 기업별 수익화 시점이 엇갈릴 전망이다. △데이터는 AI 도입 전 필수 단계인 데이터 현대화 수요가 앞서며, 라벨링·정제·컨설팅 패키지와 빅테크의 관련 기업 인수가 늘고 있다. △사이버보안은 예산 축소가 어려워 시장 방어력이 높다는 특성을 갖고 있으며, 현재 통합 플랫폼 제공 기업이 점유율을 확대 중이다. △워크플로우(기업이 일을 처리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계·관리·자동화하는 서비스)는 AI 에이전트 진입이 가장 빠른 영역으로 경쟁이 치열하지만, 교육·품질 관리 부담 탓에 도입 속도는 더딘 상황이라고 심 애널리스트는 짚었다.
심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에게 “한 섹터 내에서 업체들 간 경쟁 구도 위주로 (투자 대상을) 파악하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에 주가가 많이 올랐다 보니 투자를 놓고 고민하는 경우가 있는데 인프라 투자 발표가 이어질 때마다 그런 우려가 불식되는 게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