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잔] 감각이상

2025-02-21

작가의 외할머니는 일본에서 조선인을 상대로 하는 한의원 집 막내딸이었다. 징용되어 온 외할아버지를 만나 열여덟에 결혼을 했다. 부부는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불안한 일본을 떠나 부산으로의 피란길을 택했다. 그리고 둘째를 임신 중이던 이듬해에 히로시마에 큰 폭탄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도시에 살던 가족들과의 모든 소식이 끊겼다. 1973년 어느 날 원폭에서 홀로 살아남은 외할머니의 작은 오빠가 동생을 찾아왔다. 피폭자인 그는 평생 아이를 갖지 않은 채였다.

김효연의 ‘감각이상’은 외갓집 이야기에서 출발해 핵전쟁의 그늘을 현재 진행형으로 잇는 연작이다. 작가는 북한의 핵실험으로 불안감이 고조되던 2017년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비가시적인 핵무기의 공포 앞에서 전쟁과 식민지, 이주의 역사는 단순한 과거일 수 없었다. 다만 작가의 가족사가 그러했듯 그것은 스펙터클한 경관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 들어가는 피폭자의 기억, 2세대 피해자의 상처와 불안을 통해 다음 세대로 유전되는 중이었다. 작가의 조사에 따르면, 원자폭탄 투하 당시 히로시마에는 약 10만 명의 한국인이 거주했고, 그중 절반가량이 피폭으로 사망했다. 살아남은 이들 중 6000여 명을 제외한 이들이 귀향했는데 공교롭게도 고향이 합천이었다. 당시 지역별로 징용이 이뤄진 탓이다.

작가는 합천에서 1세대 원폭 피해자가 생활하고 있는 복지회관, 5001명의 피해자 자료가 보관된 자료실, 3세대로 삶이 이어지고 있는 주변 마을을 오랫동안 드나들었다.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기 위해 할머니의 기억 속에 있던 히로시마의 집까지 과거 바닷길을 따라 이동하며 사진과 영상 작업도 병행했다. 수년에 걸친 작가의 방대한 작업 대부분은 소소한 집안의 사물이나 주변 풍경, 연관된 인물들의 한순간을 포착한다. 과거의 사건이 현재에 스며들어 있는 가장 일상적인 방식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1세대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원폭이 투하되던 날의 B-29 미군 폭격기를 여전히 떠올린다. 합천 양지바른 마당에서 장난감 비행기를 가지고 노는 아이의 평온한 한때는 그렇게 문득 과거의 시간과 교차한다.

송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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