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설과 정원

2025-03-04

SNS 계정을 보고서 내가 3년 전 오늘, 눈 속에 피어난 크로커스 사진을 찍어 올린 사실을 알았다. 혹시나 해 서둘러 뒷마당 화단을 뒤져봤지만, 흔적이 없다. 다른 해보다 올해 꽃이 늦어진 것이다. 사람들의 많은 오해 중 하나가 식물들의 겨울나기 실패가 온도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의외로 식물의 월동은 ‘물’과 연관이 깊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식물들이 월동을 잘한다. 일본 홋카이도는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훨씬 북극에 가깝고 춥기도 하지만, 눈이 많이 내리는 탓에 식물 월동이 잘 된다.

눈은 정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눈은 말 그대로 물 덩어리다. 이 물 덩어리가 서서히 녹으면서 땅을 적시면 식물들의 활동은 빨라진다. 또 눈 속에는 공기 중에 있는 질소, 황 등이 버무려져 있는데 눈이 녹으면서 이 성분이 땅속에 흡수가 된다. 식물의 뿌리를 통해 이 영양소를 공급받아 키를 키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영양분으로 쓴다. 서양에는 “눈은 가난한 자의 비료”라는 말도 있다.

올해 내가 사는 속초에는 거의 눈이 내리지 않았다. 속초를 포함한 영동 지방은 겨울이 ‘우기’라 다른 지역보다 습설이 많이 내린다. 하지만 몇 년에 한 번씩 마른 겨울이 찾아온다. 2018년엔 무려 87일 동안 눈비가 내리지 않아 격일제 단수를 해야 할 정도였는데, 마른 겨울이 7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 식물도 식물이지만 건조한 날씨에 산불이라도 번질까 봐 가슴을 졸였다.

3월 들어서야 겨우 속초에 눈이 내렸다. 이 눈으로 속초는 한숨을 돌렸다. 설악산에 오랫동안 내려졌던 건조주의보가 해제되었고, 목마름에 허덕이던 우리 집 화단도 흰 눈에 덮여 포근해 보인다. 이 눈이 녹고 땅이 풀리면 기다리던 꽃소식도 날아올 것이다. 춘설이라는 예쁜 이름만큼 적당히 잘 내려주어 이 눈 끝에 활짝 봄꽃을 열어주길 바라본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