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제왕적 거대 야당의 시대”

2025-02-25

국정 지휘권 거의 상실한 윤 대통령

마치 적장 거꾸러뜨리겠다는 투로

“조속 개헌·정치개혁에 신명 다할 것”

옛날의 사고방식으로 대통령은 ‘선출 군주’다. 사실 이는 독립 당시 미국인들의 대통령에 대한 인식이기도 했다. 영국의 조지 3세 치하에서 벗어난 미국인들은 국가 통치 구조를 대통령중심제로 정했고, 조지 3세의 지위에 조지 워싱턴을 올려세운 셈이 됐다. 비록 임기제이긴 했지만, 당시 미국인들에게 워싱턴은 왕이었고 그에 상응하는 존경과 존중의 마음을 가졌다.

신생 대한민국도 대통령제를 채택했다. 미국에 망명해서 독립운동을 하는 한편 조지 워싱턴 대학(학사)→하버드 대학(석사)→프린스턴 대학(박사)에서 수학(修學)했던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지금에 와서 별의 별소리들이 다 나오고 있지만 그때는 그가 남한의 독보적이고 유일한 대통령감이었다. 그는 대한민국 제헌국회에서 미국식 대통령제를 채택해야 한다고 고집, 이를 성사시켰다.

그가 대통령 4선에 도전했던 1960년 정·부통령 선거는 집권 자유당의 부정으로 얼룩졌다. 사실 3·15 부정선거는 이승만 대통령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해 대선을 한 달 앞두고 경쟁 상대이던 민주당 조병옥 후보가 미국에서 신병 치료 중 급서함으로써 그의 당선은 이미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자유당 부통령 후보 이기붕이 민주당 장면 후보에 밀린다는 점이었다. 자유당은 노쇠한 이승만 대통령 유고 시 정권을 민주당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선거 부정행위를 자행했고 그것이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국정 지휘권 거의 상실한 윤 대통령

어쨌든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수립을 기어이 이뤄냄으로써 김일성에 의한 한반도 전체의 적화(赤化)를 막았고 오늘날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 대한민국의 기틀을 닦았다. 3·15부정선거로 대통령제에 대해 격렬한 거부감을 가지게 됐던 국민들은 그때의 민주당이 끈질기게 주장해왔던 의원내각제 개헌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1961년의 5·16쿠데타(시작은 쿠데타였지만 결과는 혁명이었다)에 의해 단명으로 끝났다.

이후 대통령제가 회복됐다. 3, 4, 5공화국을 거치며 통치권은 다시 강화됐고, ‘정치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은 부풀어 올랐다. 5공화국을 정리하고자 한 1987년의 9차 개헌은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적개심의 표현이었다. 대통령제를 유지하되 그 임기를 ‘5년 단임’으로 제한하고 권한도 크게 줄였다. 사실상 대통령에 대한 의회 우위적 권력구조로 변화한 것이다.

과거엔 군주에 버금가는 권위와 권력을 가졌던 대통령이 제6공화국 출범 이후엔 ‘아주 만만한’ 상대로 전락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른바 ‘3당 통합’이라는 궁여지책으로 지위를 유지했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들의 정치 경력과 정치권 내에서의 실력으로 버티어냈다. 그러나 양김(兩金)만큼의 정치 경력과 배경을 못 가졌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끝없는 투정 부리기와 싸움 걸기로 대통령직 위기의 상시화를 초래했다. 이에 더해 미국에 대한 필요 이상의 반감 표출, 북한 정권에 대한 과도한 친애의 표시로 ‘가벼운 대통령직’ 시대를 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집권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한 데 힘입어 그나마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4월의 20대 총선에서 여소야대 구도로 바뀐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집요한 정권 무너뜨리기 획책과 당의 분열로 인해 결국 탄핵당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자칭 ‘촛불 혁명정부’를 이끌며 기세를 올렸으나 지나친 친북정책과 좌 편향의 경제정책으로, 집권 민주당의 압도적인 의석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약체 국민의힘에 빼앗기고 말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에서 일약 제1야당의 대선후보로 부상, 마침내 정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야당인 민주당이 21대에 이어 22대 총선에서도 절대적 다수의석을 차지함으로써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의 국정 지휘권을 거의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거대 야당은 제가 취임하기도 전부터 대통령 선제 탄핵을 주장했고, 줄 탄핵, 입법 폭주, 예산 폭거로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켜왔습니다.”

마치 적장 거꾸러뜨리겠다는 투로

윤 대통령이 25일 헌법재판소에서 행한 최종 의견 진술을 통해 한 말이다. 이는 모든 국민이 지켜봐 온 그대로 사실이다. 민주당은 입법권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이재명 당 대표가 취임한 2022년 8월 이후 한덕수 국무총리 겸 대통령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 발의(24년 12월 26일) 때까지 2년 4개월 동안 민주당은 무려 29차례나 이를 거듭했다(윤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라고 해도 마찬가지). 이 중 13건이 본회의를 통과해 헌법재판소에 넘겨졌다. 같은 기간 민주당이 발의한 특검법도 20건에 이른다.

“지금 우리나라는,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제왕적 거대 야당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제왕적 거대 야당의 폭주가 대한민국 존립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이 국헌 문란 행위를 지속해 왔다고 주장했다.

“제가 정말 제왕적 대통령이라면, 공수처, 경찰, 검찰이 앞다퉈서 저를 수사하겠다고 나서고, 내란죄 수사권도 없는 공수처가 영장 쇼핑, 공문서위조까지 해가면서 저를 체포할 수 있었겠습니까?”

윤 대통령으로서는 정말 기가 막혔을 법하다. 국민 직선의 대통령에 대해 상응하는 존경과 존중의 마음을 표하기는커녕 마치 적장을 거꾸러뜨려 공을 세우겠다는 투로 각 기관이 수사 경쟁을 벌였고 공수처의 경우 이를 위한 체포와 구금에 혈안이 된 모습을 보였다.

“거대 야당은,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에 기해서 선포된 계엄을 불법 내란으로 둔갑시켜 탄핵소추를 성공시켰습니다.”

윤 대통령의 말 그대로다. 사법부의 판단이 나기도 전에 야당은 비상계엄선포를 ‘내란’으로, 윤 대통령을 ‘내란 수괴’로 부르고 있다. 대통령을 한껏 모욕주면서 스스로는 국회의원입네, 정당 대표입네 으쓱대는 모습들이 가관이다. 특히 12개의 범죄 혐의로 5개의 법정을 들락거려야 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을 죄인으로 몰아대는 민주당 이 대표는 자기 행동이 창피하지도 않은지 궁금하다.

윤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갔다.

“그러고는 헌법재판소 심판에서는 탄핵 사유에서 내란을 삭제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초유의 사기 탄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략) 거대 야당과 소추단이 헌재 심판 대상에서 내란을 삭제한 이유는, 심리 시간을 단축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내란의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조속 개헌·정치개혁에 신명 다할 것”

탄핵 사유에서 ‘내란’을 삭제했다면 소추를 취하하거나 다시 국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헌재도 주요 사유가 사라진 소추안이라면 각하하는 게 옳다. 탄핵이란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탄핵소추단과 헌재가 탈법적 방식을 정당하다고 우기면서 기어이 선고까지 강행할 때 그 결과를 수긍하고 수용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화와 타협 그리고 상호 양보의 방식으로 국정 리더십을 회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계엄령은 윤 대통령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통치권 회복 방안이었다.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었다면 민주당이 지금이라도 그걸 설명해 줘야 한다.

계엄령은 윤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권한이다. 비상한 상황에서는 비상한 조처를 할 수밖에 없다. 헌법이 몇몇 비상한 조치권을 대통령에 부여한 까닭이 그렇다. 이를 즉각 ‘내란죄’로 몰면서 현직 대통령을 구속부터 하고 헌재에 탄핵 심판을 청구한 야당이나, 이를 바로 받아서 ‘내란죄’ 철회 조언까지 해가며 심판에 열을 올리는 헌재가 인식하는 정치란 무엇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제왕적 대통령’이기는커녕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해소 및 대통령 되기 제단에 바쳐진 ‘인질 대통령’ ‘희생양 대통령’ 신세가 된 윤 대통령을 헌재까지 나서서 핍박하는 광경이 아주 황당하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이런 독수(毒手)로 윤 대통령을 몰아내고 집권하면 대통령의 권한과 권위를 회복시킬 수 있는 묘안이라도 있는 건가?

자주색 법복을 입고 재판관석에 오연히(傲然) 앉아서 대통령을 심판하고 있는 헌법재판관들에 대해서도 한마디는 해야겠다. 자주색은 황제의 색으로 최고의 권위와 고귀함 숭고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헌법재판관의 자주색 법복은 헌재의 위상과 권위를 표현한다고들 하던데 정말 그런가? 그런 의미가 조금이라도 들어 있다면, 그 권위를 국민과 역사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결정을 내려 줘야 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최종 의견에서 직무에 복귀한다면 잔여임기에 연연하지 않고 개헌과 정치개혁을 이뤄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개 서생이 보기에도, 아쉬운 대로 합당한 해결방안이 될듯하다. 정치권이나 헌재나 헌정사에 또다시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남기지 않고 상생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데 지혜를 모아 주시라.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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