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의 진정성을 보이려면

2025-08-27

집권 여당은 언론개혁의 핵심과제로 고의적 왜곡이나 허위성에 대해 책임을 묻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추진한다. 국정기획위원회가 국정과제의 가장 선두에 둔 것이 ‘국민이 하나 되는 정치’임을 볼 때 언론개혁의 궁극적 목적은 진실에 근거한 공론장 회복을 통한 국민통합이다.

불행히도 인류가 현재 누리고 있는 미디어 환경은 무언가를 파괴하고 쪼개는 데는 능하나 어떤 것을 합치고 세우는 데는 부적합하다. 댓글은 짧아지고 여론형성의 시간 단위는 빨라졌다. 사회적 토론이나 숙의(熟議)가 한가한 개념처럼 들리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대인은 미디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 ‘안’에서 산다. 알고리즘과 플랫폼이 우리가 어떤 정보에 둘러싸이는지, 나아가 어떤 결정과 선택을 하는지까지 영향을 미친다.

공론장 회복은 국민통합의 핵심

언론의 책무만 강조해서는 부족

정치인의 발언도 함께 규율 필요

언론 공익성 기준부터 정립해야

공론장의 복원은 정보가 생산되고 퍼 날라지고 소비되는 전체 생태계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공염불이 될 것이다. 이제 인공지능까지 합세한 정보의 바닷속에서 허위성, 악의성을 잡아내 입증하는 데 설사 성공한다 할지라도 이것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현행법상 온라인 신문은 자택 주소와 인터넷 도메인만 가지고 개인사업자 등록만 하면 뚝딱 만들 수 있다. 기업은 기업대로 울며 겨자 먹기로 상대하는 언론사가 수백 곳이라고도 한다. 우선 이렇게 느슨한 등록제도부터 살피고, 이와 더불어 팩트체크 기관 지원 같은 양질의 저널리즘을 세우는 구조적인 지원이 때려잡기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한국 언론의 정파성은 해묵은 문제가 맞다. 정파성의 토대 위에 허위 조작 정보 문제의 심각성은 커진다. 여기에 팬덤 정치가 가세한다. 언론의 정파성과 팬덤 정치는 서로를 필요로 하기도 하면서 상대에게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한다. 그래서 여론생태계 전체를 볼 때, 언론의 주요 정보원인 정치인의 발언이 지금 이대로라면 언론의 책무성 강화만으로 공론장의 복원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팬덤 결집의 전략판에서 악의적 프레임 씌우기나 상대편 악마화는 핵심 전술이다. 명백한 허위정보만큼 공론장의 질서를 위협하는 것은 사실과 허구가 적당히 버무려진 정보다. ‘냄새가 난다’라거나 ‘배후가 있다’는 등 근거가 부족한 의혹 제기나 악의적 프레임이 그것이다. 호흡이 짧은 미디어 환경에서 프레임은 복잡한 내러티브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잘 조합한 단어 하나로도 가능하다. 세제 개편을 ‘부자 감세’라고 부르는 순간, 부자들에만 혜택을 주는 나쁜 감세라는 의미에 가로막혀 세제를 더 자세히 분석해볼 여지를 막는다. 상법개정안에 ‘경제 내란’이라는 딱지가, 한수원의 계약에는 ‘매국 계약’이 붙는 순간 설명이나 배경에 대한 이해는 실종된다. 기억하기 쉬운 단어는 계속 후속된 정보들을 걸러내는 필터가 된다. 어떤 정책이든 곰곰이 따져보는 일은 원천적으로 가로막히고 찬성과 반대만 남는다.

언제부터인가 국회 회의장 중계를 보면, 말로 의견을 말하고 상대를 설득하는 모습보다 손에 든 플래카드만 보인다. 의혹을 제기하거나 자극적인 언어로 양극단의 사고를 부추기는 진원지는 과연 어디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기억하기 쉬운 유행어를 만들어 퍼뜨려야 유명한 정치인이 된다. 국민은 유능한 정치인을 원하지만, 팬덤정치 아래 정당은 유명한 정치인을 선호한다. 언론인은 선거 때마다 정치인으로 경력을 전환한다.

국민통합에 기여하고자 한다면 언론의 책임을 묻는 동시에 정치인의 발언을 어떻게 규율할 것인지도 동시에 논의해야 한다. 국회 윤리위원회는 명시적으로는 막말 등 의원의 품위와 직무윤리에 관한 사항을 다룬다고는 하나 제 식구 감싸기에는 여야가 온전한 통합 상태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꾸준히 제기해 온 윤리위원회의 상설화나 의회윤리법은 감감무소식이다.

이와 함께, 넘치는 정당현수막에 등장하는 끝도 없는 혐오 표현들도 문제다. 현수막은 선택하지 않아도 강제로 보게 되는 강력한 미디어다. 국회는 정당의 현수막을 옥외광고물법의 예외로 두어 정치 혐오의 일상환경을 상시화했다.

고의적 왜곡이나 허위정보에 대해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문제의식은 공감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2021년에도 발의되었다가 폐기되었던 만큼 언론 자유 및 권력감시 위축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대통령실은 이 와중에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포함한 유튜브 채널 셋을 대통령실 등록기자단에 공식 포함했다. 영향력이 유일한 기준이라면 인정한다. 그러나 이들 매체가 ‘공익성’을 갖추었기 때문에 포함했다는 말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음모론이나 상대에 대한 거침없는 증오가 얼마나 파급력이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공익적인 사회 비판이라면 조롱과 혐오가 끝이 아니라 냉정한 비판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이래서는 언론개혁의 명분이 깎인다.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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