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눈치 보면서 대출 늘려야 하는 은행들 '딜레마'

2025-05-12

[비즈한국] 서울 아파트 매매 계약을 한 30대 후반 A 씨 부부. A씨는 최근 대출을 받기 위해 여러 은행을 찾았는데 금리가 0.3%p 이상 차이 나는 상황이라 고민이 빠졌다. 5년 고정 금리를 3.6%를 제안한 곳도 있었지만 정기 적금에 평잔 200만 원 이상 등 금리 인하를 조건으로 다양한 요구사항이 있었기 때문. 금리가 더 내려갈 것 같다는 판단에 ‘6개월 변동형 금리’도 물어봤지만, 모든 은행들이 4%대 초반을 언급하며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상적인 부분은 은행들마다 “최근 금리가 내려간 것이 반영됐다”면서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전망이 우세함에도 “크게 내려갈 것 같지 않다”고 얘기한다는 것. A 씨는 “은행들이 입을 모아 7월부터 적용되는 대출 규제 강화를 이야기하며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해도 크게 낮출 것 같지 않다고 얘기하더라”고 말했다.

최근 아파트를 사러 임장을 다니고 있는 30대 후반 B 씨. B 씨는 7월 이후에나 잔금을 낼 것으로 보고 매수하려는 아파트 금액대를 낮췄다. 4억 원가량을 보유한 B씨는 4억 원 정도를 대출받아 8억 원대 매물을 사려 했지만 최근 금융당국에서 규제 강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 안정적인 대기업에 다니고 있지만 외벌이인 터라 이자가 급등하면 원리금 부담이 늘어날 것도 걱정이다. 대출이 안 나오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에 B 씨는 최근 7억 원대 아파트를 살펴보며 대출 규모를 줄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대출 어렵게 하겠다’ 금융당국 기조 여전

금융당국 정책 흐름은 ‘가계부채 관리 강화 기조’다. 7월부터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 등을 추가로 조이는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시행하는 게 대표적이다.

현재 은행권에선 DSR이 40%, 저축은행에선 50%를 넘지 않는 한도 안에서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스트레스 DSR은 미래 금리 변동 위험을 반영해 대출 금리에 가산 금리(스트레스 금리)를 부과해 대출한도를 산출하는 방식으로, 미래 금리가 변동할 수 있는 리스크를 반영해 대출 한도를 줄이면서 동시에 가계대출 부담을 관리할 수 있다.

3단계 스트레스 DSR이 도입되면 은행권 및 2금융권의 주담대와 신용대출, 기타대출 금리에 가산금리(스트레스금리) 100%(하한)인 1.5%가 적용될 것으로 점쳐진다. 이미 금융당국은 지난해 9월부터 2단계 조치를 도입하면서 은행권 주담대·신용대출 및 2금융권 주담대에 수도권 1.2%, 비수도권 0.75%의 스트레스 금리를 적용해왔다. 이는 지난해 2월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을 대상으로 0.38%를 적용하는 1단계 조치를 도입했던 것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금리 조금 낮췄지만 은행 대출은 역성장

은행들도 고심에 빠졌다. 5대 은행의 고정형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한 달 사이 최대 0.36%p 내린 상황.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고정형 주담대 금리는 연 3.04~5.54%(9일 기준)로, 한 달 전 연 3.40~5.90%였던 것과 비교하면 상·하단 모두 0.36%p 낮아졌다. 지난달 초부터 고정형 주담대 금리 산정 기준이 되는 은행채 5년물이 하락하면서 요지부동이던 대출금리도 자연스럽게 내린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은행 자체 대출을 늘려야 하는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는 동시에 경쟁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 고심하는 모양새다. 실제로 은행들의 대출은 역성장하고 있다. 대부분의 주담대는 디딤돌대출과 같은 정책대출이어서 은행 재원 대출을 늘리지 않으면 향후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실제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4월 말 자체 대출 잔액은 511조 4069억 원으로, 4개월 전인 12월 말(516조 8209억 원)보다 5조 4000억 원 넘게 줄어들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우리나라 은행들은 부동산 대출로 수익을 내는 구조인데 대출이 어려워져서 대출 자산이 역성장 하게 되면 그만큼 수익성이 흔들리게 된다”며 “다만 가계대출은 신중해야 한다는 당국 방침을 어길 수는 없다 보니 한은의 금리 인하에도 무리하게 금리를 낮추지도 못하고 여러 눈치를 보는 상황인 것 같다”고 내다봤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5월과 6월, 금통위가 예정된 만큼 금리 인하를 점치고 있지만 빠르게 주담대 금리 인하로 반영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금통위원 전원은 포워드 가이던스에서 “3개월 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대출 금리를 인하할 경우 부동산 가격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선 은행 관계자는 “새 정부가 출범하게 되면 부동산 정책 역시 변화할 텐데 은행들도 새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발맞추려 하지 않겠냐”며 “다만 집값이 들썩거리는 것만큼은 막으려고 할 테니 은행들 역시 그때까지는 무리하게 주택담보대출 상품에 변화를 주지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핫클릭]

· [단독] 골프존 '스크라이크존' 운영사 폐업, 사명 같은 뉴딘콘텐츠로 사업 양도

· 2조 8300억 투입되는 천궁-Ⅲ, 개발 시제 제작업체 선정 착수

· 넷플릭스 가격 올렸는데 네이버 멤버십은 그대로? "네넷"

· 4년 만에 경쟁자 탄생 앞둔 케이뱅크, '오프라인'으로 나오는 까닭

· '일몰기한' 7회 연장도 있어…조세특례 24건 축소·폐지 권고에도 6건만 폐지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