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 보는 정유업계... SAF(지속가능항공유) 수입국 전락 위기"

2025-04-10

'미래 항공유' SAF… 국내 전용시설 사실상 전무

주요국 정부, SAF 혼입 비율 대폭 확대... 시장 재편

전용시설 미국 100개, 캐나다 27개... 한국만 태평

SK에너지, 전용시설 구축 발표... 전문가들 "미흡"

"연산 규모 너무 작고, 기존 시설에 배관만 추가"

HD현대, 에쓰오일 등 3사... 코프로세싱 공정 채택

투자비용 저렴... 혼합률 5% 불과, 수율도 10% 미만

투자 시기 놓치면, 항공유 수출 1위→수입국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후 위기는 가짜”라고 주창하고 있으나, 환경 이슈는 전 세계 모든 기업이 가장 중시하는 경영 현안 중 하나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에너지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전체 탄소 배출량에서 수송 부문이 20%를 차지하는 만큼 선진국을 중심으로 저탄소 대체 에너지원 개발 경쟁이 뜨겁다. 그 한가운데 지속가능항공유(SAF)가 있다. 국내 정유사들도 앞다퉈 SAF 인프라 정비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현장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은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내 기업 상당수가 초기 투자비용 부담이 적은 기존 시설 개량에 치중하면서, 에너지 분야 블루오션으로 평가받는 SAF 시장을 해외 경쟁 기업에 내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는 것. 국내에 SAF 전용 생산시설이 단 한 곳도 없다는 사실이 이같은 우려를 뒷받침한다. 반면 미국은 100개, 캐나다는 27개의 SAF 전용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다.

항공유 수출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을 유지해 온 국내 정유업계는 코프로세싱(co-processing) 공정으로 저탄소 항공유를 생산 중이다. 코프로세싱은 시장 초기 투자 부담을 줄이고자, 임시 방편용으로 고안된 공정이다. 설비 구축 비용이 저렴한 대신 생산되는 SAF의 품질이 낮다. 기존 연료와의 혼합비율은 최대 5%를 넘지 못한다. 원료 수급도 불안정하다는 단점이 있다. 국내 정유업계가 코프로세싱 방식에 주력한다면, 수출은커녕 되레 SAF를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SAF는 기존 항공유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대 80%까지 줄일 수 있는 친환경 연료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제시한 '항공산업 2050 탄소중립(탄소 순배출량 0)' 목표치 달성을 위해서는, SAF 전용 생산시설 확보가 필수적이다. 협회는 위 목표와 관련 SAF의 기여도를 65%라고 평가했다.

SAF는 폐식용유, 사탕수수 등 폐자원을 원료로 하기 때문에 탄소 배출량이 적고, 기존 항공유와 물성이 같아 엔진 계통의 개조 없이 모든 항공기에 쓸 수 있다.

유럽연합(EU)을 비롯해 노르웨이, 싱가포르 등은 탄소 저감을 목표로 SAF 의무 사용 비율을 상향 조정했다. EU는 올해부터 유럽에서 이·착륙하는 항공기에 SAF 2% 혼합을 의무화했다. 혼합 비율은 2030년 6%, 2050년 70%로 대폭 확대될 계획이다. 싱가포르는 2026년부터 모든 국제선 항공편에 SAF를 최소 1% 이상 섞어 쓰도록 의무화하고, 이 비율을 2030년 5%까지 높이기로 했다. 일본 역시 SAF 의무 사용 비율을 2030년 10%까지 올리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항공유를 제일 많이 파는 나라다. 지난해 1년 동안에만 89억4621만 달러(한화 13조1070억원) 상당을 수출했다. 2023년에도 97억6000만 달러(한화 12조7000억원)를 판매했다. 같은 기간 98억3000만 달러를 수출한 2차전지와 비슷한 규모다.

그러나 항공유 부문에서 SAF 시장이 커질수록 국내 정유업계 경쟁력은 악화되고 있다. 항공유는 전체 석유제품 가운데 경유, 휘발유 다음으로 수출 비중이 큰 품목이다. 이 중 40%(2024년 기준 3694만5000배럴)가 미국으로 간다. 미국은 2030년까지 항공 연료의 10%를 SAF로 대체하고, 2050년에는 자국 항공유 수요 전량을 SAF로 충당하겠다는 목표를 담은 ‘SAF 그랜드 챌린지’를 발표했다.

SAF 대량 생산시설을 서둘러 구축하지 않으면, 국내 정유업계는 매출의 40% 가량을 잃을 수도 있다. SAF 가격이 기존 화석연료 기반 항공유의 3배라는 점을 고려하면 손실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항공업계가 탄소 저감 정책에 동참하면서 SAF 수요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Markets and Markets)은 5년 뒤인 2030년 세계 SAF 시장 규모를 169억 달러(한화 22조8000억원)로 전망했다. 매년 평균 47.7% 성장할 것이란 분석도 붙였다. 또 다른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은 2022년 37만5000톤이던 글로벌 SAF 사용량이 2035년 2243만6000톤으로 60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시야를 국내로 돌리면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진다. IATA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SAF 생산량은 약 150만톤(18억7500만 리터). 국내 정유사의 SAF 생산량은 모두 합쳐도 연산 10만250여 톤에 불과하다. SAF 투자에 소극적인 국내 정유업계의 현 주소를 잘 보여주는 수치이다.

전용 생산시설 구축은 가장 큰 숙제이다. 업계 1위인 SK에너지는 지난해 SAF 전용 생산시설을 도입했다고 밝혔으나 업계 전문가들의 반응엔 온도차가 있다. 전용시설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 다수이다.

주장의 근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연간 생산량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회사가 공개한 SAF 연산 규모는 10민톤 정도이다. 취재를 종합하면 전문가들은 연산 규모 30만톤 이상은 돼야 전용시설로 볼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두 번째는 설비 신설이 아니라 개량에 가깝다는 점이다. 기존 시설에 원료 탱크를 연결하는 배관만 덧붙인 정도에 불과해 전용시설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다른 경쟁사와 비교하면 그나마 SK에너지는 사정이 낫다.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3사는 전용 시설 구축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코프로세싱 방식의 한계를 고려할 때, 공정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 세계 SAF 공정을 제안·검증하는 기관은 미국재료시험협회(American Society for Testing Materials, 이하 ASTM)이다. 지금까지 ASTM은 모두 11개 공정을 승인했다. 가장 대중적인 프로세스는 ▲HEFA(Hydrotreated Esters and Fatty Acids) ▲FT(Fischer Tropsch) ▲AtJ(Alcohol-to-Jet) ▲PTL(Power-to-Liquid) 등이다.

원유에 폐식용유 등 바이오 원료를 혼합하는 코프로세싱도 ASTM이 인증한 11개 공정 중 하나이다. 다만 이 방식으로 생산된 SAF는 품질이 낮아 기존 항공유와 혼합할 수 있는 비율이 5% 밖에 안 된다. 수율도 10%를 밑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승인 받은 SAF 공정 중 기술적 성숙도가 가장 높은 HEFA는 수율과 경제성에서 우위에 있다. 무엇보다 기존 항공유와 최대로 혼합할 수 있는 비율이 50%에 달한다. 일본에서 주목 중인 AtJ 공정도 기존 항공유와 50%까지 섞을 수 있다.

해외에서 100% 원료를 공급받아 SAF 완제품을 생산하는 GS칼텍스를 제외하고 나머지 국내 정유 3사는 코프로세싱 공정으로 SAF를 제조, 판매한다.

전 세계 공항에서 SAF 의무 혼합 비율을 70%까지 높일 경우, '항공유 수출 세계 1위'인 한국은 5%만 자국산 SAF를 쓰고, 나머지는 수입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다.

에너지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정유사들은 기존 밸류체인만 활용하면서 리스크가 적은 코프로세싱 공정으로 SAF 시장의 간만 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SAF 원료인 폐식용유, 팜 부산물, 팜 정제유 등의 수급 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국내에서 조달할 수 있는 바이오 원료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부분을 수입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비영리법인 기후솔루션 송한새 팀장은 “정유사의 SAF 관련 투자가 정체되는 이유는 정부의 확고한 중장기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항공 부문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고, 단순히 '2027년 1% 내외 혼합'이라는 보여주기식 정책만 도입하면 업계 전체가 그린워싱(Green washing, 위장 환경주의) 리스크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김재훈 교수는 “고도 성장이 예상되는 시장에서 투자 시기를 놓치면 세계 1위 항공유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국내 정유사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중이, 2023년 기준 평균 0.8%에 머무르는 점을 문제로 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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