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차 직장인 한모(32)씨는 최근 큰맘 먹고 15만원짜리 키보드를 장만했다. 회사에서 받은 업무용 키보드가 있지만, 키보드를 두드릴 때마다 나는 소리가 크고 타건 느낌도 좋지 않아서다. 한씨는 원하는 조건의 키보드를 조립해주는 매장을 이용했다. 키보드의 특정 버튼을 누르면 키보드 전체에 은은한 LED 조명이 들어오고 자판을 칠 때 조용하고 부드럽게 눌리도록 주문했다. 한씨는 “출근부터 퇴근까지 종일 키보드를 쓰는데 불편한 걸 참을 필요는 없다”며 “일반 키보드의 두 배 이상 값이지만, 타자감도 좋고 주변 동료들이 ‘예쁘다’고 칭찬하니 퍽퍽한 직장생활의 재미 요소가 돼 만족한다”고 말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기성 제품에 자신의 취향을 적용하는 ‘모디슈머(modi-sumer)’ 소비 성향이 짙어지고 있다. 수정하다(modify)와 소비자(consumer)를 합성한 표현으로, 식품부터 전자기기, 패션 제품까지 자신의 취향을 적용해 ‘세상에서 하나뿐인’ 제품을 만들어 쓰는 현상이다.
유통업체들도 이런 트렌드에 주목하고 있다. 개인 맞춤형 제품을 소비자가 더 쉽고 편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판매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롯데하이마트는 ‘조립PC 특화존’ ‘타건샵’ 등을 강화하고 있다. PC의 중앙처리장치(CPU), 메인 보드, 주기억장치(RAM) 등 여러 부품을 살펴보고 원하는 사양으로 만들 수 있는 곳이다. 예를 들어, 게임용 PC를 구입한다면 그래픽카드를 원하는 사양으로 골라 조립할 수 있다.
타건샵에서는 100여 종의 키보드를 직접 이용해보고 취향에 맞는 부품을 조합해서 주문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고르면 베어본(키보드 뼈대), 키캡(키보드 스위치에 끼우는 캡) 등 원하는 부품을 골라 바꾸면 된다. 이들 특화존은 매출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지난해 타건샵을 조성한 롯데하이마트 광명롯데몰점·주안점·서청주롯데마트점·광복롯데몰점의 올해 키보드 매출은 롯데하이마트 전체 점포의 키보드 평균 매출의 8배 수준이다.

식품업계는 모디슈머 트렌드를 식음료에 적용한 ‘내시피(나의+레시피)’ 제품이 인기다. 하이트진로가 이달 출시한 새콤한 젤리 맛 소주인 ‘햇아이셔에이슬’이 대표적이다. ‘메로나에이슬’ ‘비타500에이슬’ 등 다른 소주 제품들도 소셜미디어(SNS)에서 유행하는 내시피 사례를 참고해 개발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소주에 새콤한 젤리나 아이스크림, 음료수 등을 넣어서 마시는 SNS 등을 참고해 테스트를 거쳐 출시했다”며 “대개 이런 제품은 주목을 끌기 위한 이벤트성으로 출시하지만, ‘아이셔에이슬’은 소비자 반응이 좋아 세 번의 재출시를 거듭하다가 현재 상시 판매 품목이 됐다”고 말했다.
농심도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부터 마라 짜파게티, 김치짜구리 등 독특한 라면 레시피를 적용한 상품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신소용 롯데하이마트 상품기획(MD) 전략실장은 “고객의 수요가 점점 다양화, 전문화하고 있어 이를 충족시키려면 아예 전문화된 경험을 제공하거나,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움을 주는 식으로 지갑을 열 수 있는 확실한 이유를 제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