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의 역습
〈제2부〉 기후변화와 싸우는 사람들
6화. 탄소중립을 보는 두 개의 시각
트럼프가 믿는 구석은 무엇일까.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 당선 후 일성으로 불법 이민자 추방과 함께 화석연료 확대를 공언했다. 석유·가스 시추를 늘려 에너지 가격을 절반으로 낮추겠다고 했다. 기후위기로 세계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 화석연료 산업의 부흥을 외치는 그의 신념은 어디서 비롯됐나.
이산화탄소는 죽음의 물질인가, 축복인가
이산화탄소(CO2)가 답이다.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의 주범이라는 게 과학계의 정설이나 사회 통념이다. 그러나 기후위기론을 "픽션(허구)"이라고 반박하는 사람들은 이산화탄소를 인류를 번영으로 이끄는 축복의 물질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가 믿는 구석은 바로 이런 '기후위기 허구론자'의 논리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를 연결하는 고속도로에 세워진 광고판이다. 이산화탄소를 홍보하는 광고판이라니,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주요 도로에 광고판을 떡하니 세운 주체는 ‘미국 이산화탄소 연맹’(CO2 Coalition). 이 단체는 윌리엄 해퍼 프린스턴대 물리학과 교수를 주축으로 학자들이 모여 2015년 설립했다.
해퍼는 트럼프 1기 정부에서 국가안보위원회(NSC) 신기술 수석국장을 지냈다. 연맹의 주요 멤버들도 트럼프 정부에서 기후에너지 정책에 영향을 끼쳤다. 존 클라우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와 패트릭 무어 그린피스 공동창립자도 회원이다.
격전지서 이산화탄소 광고, 승리로 이어져
이 광고판은 지난 5일 치러진 미 대선과도 무관하지 않다. 박석순(66)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화석연료 산업이 발달한 지역이면서 선거 격전지이기도 한 펜실베이니아주를 이산화탄소 연맹이 집중적으로 공략했다”고 전했다. 국내 학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기후위기 허구론을 설파하는 박 교수는 '기후의 역습' 취재팀과 만나 논문과 데이터를 제시하며 기후위기에 대해 반론을 폈다.
트럼프의 반(反)기후 정책을 강조하면서 이산화탄소의 중요성을 홍보하는 효과도 노린 것이다. 전략이 먹힌 걸까. 선거인단이 19명으로 가장 많았던 펜실베이니아주는 트럼프의 손을 들어줬다.
우리나라는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 9위(2020년 기준)로 10위권에 들어 ‘기후악당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산화탄소는 기후위기를 촉발하는 유해한 물질인가, 인류를 번영하게 하는 유익한 물질인가? 같은 이산화탄소를 두고 기후 위기론자와 기후 허구론자는 정반대의 시각으로 충돌한다. 지난주 “북극곰 멸종? 더 늘어났다”-5화에 이어 이산화탄소 문제를 중심으로 박석순 교수 등 허구론자들이 제기한 쟁점(④, ⑤, ⑥)을 다룬다.
① 북극곰이 멸종하나.
② 빙하가 녹아내리고 사라지나.
③ 해수면이 상승하고 산호초는 사라지나.
④ 폭염, 가뭄, 홍수, 태풍, 폭우 등과 같은 기상 이변은 기후변화가 원인인가.
⑤ 온실효과를 유발하는 이산화탄소는 죽음의 물질인가.
⑥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 온도를 낮추지 않으면 인류는 멸망하나.
“해양대기청 해체하라”…기후 허구론자들 뭉쳤다
이산화탄소 연맹 외에도 각국에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단체들이 있다. 미국의 하트랜드연구소(Heartland Institute)와 헤리티지재단(Heritage Foundation), 네덜란드의 크린텔(CLINTEL), 캐나다 프렌즈오브사이언스(Friends of Science) 등이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은 지난해 발표한 정책 제언 ‘프로젝트2025’에서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해체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산화탄소 연맹은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을 기회로 삼을 계획이다. 최근 일본 재팬타임스에 따르면 그레고리 라이트스톤 이산화탄소 연맹 전무이사는 “정부에 불필요한 두려움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개방적이고 공정한 토론을 하려면 기후 현실주의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1기 정부에서 기후위기론에 회의적인 '기후안보위원회'을 설립바 있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 분야에서 활동하는 세계기후지성인재단 ‘크린텔’은 2019년 구스 버크하우트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 지구물리학과 명예교수와 과학 저널리스트 마르셀 크록이 설립했다. “기후위기는 없다”는 ‘세계기후선언’을 발표했으며 60여 개국 2000명의 전문가가 이에 서명했다. “기후위기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공포심을 조장할 이유가 전혀 없다. 우리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하겠다는 유해하고 비현실적인 기후 정책에 반대한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지금까지 지구의 기후는 자연적 요인에 의해 더워지거나 추워지기를 수없이 반복해 왔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온실가스의 영향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으며, 이산화탄소가 환경에 유익하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이산화탄소는 오염 물질이 아니며,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생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