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주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일부 장관이 이주호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사의를 표했지만, 이 대행이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있다고 정부 고위 관계자가 27일 말했다. 이 대행과 이 대행을 보좌하는 국무조정실이 “조금만 더 버텨달라”며 붙잡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민주당의 줄탄핵을 겪으며 직을 내려놓고 싶은 일부 장관의 마음은 심정적으로 이해하지만, 정부의 존속을 위해서는 만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한동안은 윤석열 정부 출신 인사들과의 불편한 동거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대행이 일부 장관의 사의를 만류하는 이유는 인수위원회 없이 바로 다음 정부가 출범하면서도 공석이 된 장관으로 인해 국무위원 숫자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 때문이다.
지난 1일 민주당의 탄핵 발의 뒤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가 그만두며 현재 국무회의에서 의결 권한을 행사할 국무위원은 14명이다. 정부는 관련 법률상 국무회의 개의 요건으로 11명의 국무위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1명이라도 사표를 받아주면 도미노처럼 다 그만둬 국무회의 정족수가 무너질 수 있다”며 “새 정부의 국무위원도 인사청문회 때문에 바로 채워질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국무회의 정족수가 중요한 건 대선 뒤 대통령이 취임해도 국무회의의 심의와 의결 없이는 임명권과 예산 집행 등 권한 행사가 극히 제한되기 때문이다. 총리 후보자의 경우 대통령이 국회에 임명 동의안을 바로 제출하면 되지만, 장관 후보자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국회에 인사청문안을 송부해야 한다. 인사청문회가 끝난 뒤에도 총리가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에게 임명권 행사를 제청하는 절차를 거쳐야 장관에 최종적으로 임명될 수 있다. 국조실 관계자는 “단순 인사 문제를 넘어 민생과 치안을 위해서도 장관들이 자리를 비워선 안 된다는 게 이 대행의 입장”이라고 했다.

다음 정부의 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준을 통과할 때까진 이 대행이 국무총리 권한대행의 역할까지 맡아야 할 가능성도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때도 첫 국무총리(한덕수)의 국회 인준 절차가 지연되며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총리였던 김부겸 전 총리가 윤석열 정부 장관의 임명을 윤 전 대통령에게 제청했었다.
2017년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 때도 박근혜 정부 출신 국무위원과의 동거가 76일간 이어졌다.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 출신 장관들과 별도로 오찬을 갖고 “정권은 유한하지만, 조국은 영원하다. 여러분은 엄연한 문재인 정부의 장관들”이라며 국정 협조를 요청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