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모의 나이가 자녀의 성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연구진은 두 명 이상의 자녀를 둔 여성 5만 8007명을 대상으로 산모의 신체적 특성과 자녀 성별의 관계를 분석했다. 분석에 포함된 요소는 키, 체질량지수(BMI), 인종, 머리색, 혈액형, 수면-각성 주기, 초경 시기, 첫 출산 당시 나이 등 총 여덟 가지였다.
이 가운데 자녀의 성별과 유의미한 연관성을 보인 것은 '첫 출산 시 산모의 나이'였다. 나머지 일곱 가지 특성은 자녀 성별과 별다른 상관관계를 나타내지 않았다. 특히 첫 출산 당시 산모의 나이가 많을수록 한쪽 성별의 자녀만 낳을 확률이 높게 나타났다. 첫 출산 나이가 28세 이상인 여성의 경우 같은 성별의 아이만 가질 확률은 43%였지만, 23세 미만인 여성은 34%에 그쳤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가 여성의 나이에 따른 생리적 변화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나이가 들수록 질 내 pH(산성도) 높아지고, 난포기가 짧아지는 등의 변화가 나타나는데 이는 정자의 생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질 내 산성도가 높아지면 X염색체를 가진 정자의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고, 난포기가 짧아질수록 빠르게 움직이는 Y염색체 정자가 유리해진다. 결과적으로 산모의 신체 환경이 특정 성별 정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해 같은 성별 자녀만 연달아 출산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해석이다.
연구는 이뿐만 아니라 형제나 자매가 세 명 이상인 가정일수록 같은 성별 자녀가 계속 태어날 확률이 높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예를 들어 세 명의 자녀가 모두 아들인 가정은 네 번째 아이도 아들일 확률이 61%에 달했고 모두 딸인 경우는 같은 조건에서 58%였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성별 확률이 임신마다 50 대 50이라는 통념과는 다른 결과다.
호주 멜버른대학교의 산부인과 전문의 알렉스 폴리아코프 박사는 "이번 연구는 부모에게 자녀 성별이 반드시 동등한 확률로 결정된다고만 말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특히 이미 같은 성별 자녀가 여럿 있는 가정은 다음 아이도 같은 성별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전했다.
다만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모계 연령이 자녀 성별을 결정짓는 유일한 요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며 "향후 생활습관, 영양 상태, 환경 노출, 유전자 간 상호작용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해당 연구 결과는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s)'에 최근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