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신문=성원영기자]
초등학생 때 반에서 만화책을 자주 빌리던 친구가 있었다.
한 번은 아이들이 만화책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이 친구가 자기는 정당하게 돈을 내고 빌렸기 때문에 안된다고 거절했다.
지금처럼 콘텐츠 유료 결제 시스템도 없던 시절에 일찍부터 저작권 개념이 투철한 친구였다.
짓궂은 아이들은 그 친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몰래 만화책을 훔쳐봤다. 만약 당사자에게 들켜서 대여비를 내놓으라고 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서울시 공중선 지중화 기사를 쓰면서 이와 비슷한 사례를 발견했다.
대형통신사들이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전신주를 무단으로 점거하고 케이블을 연결해 사용한다는 것이다.
오래된 주택가에 공중케이블이 유난히 많았던 게 떠올랐다. 가끔 골목을 지나다니다 보면 개중에 까치가 둥지를 튼 것처럼 전신주에 공중케이블이 지저분하게 얽혀있는 것도 눈에 띈다.
이처럼 실제로 통신사가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전신주를 무단 점유하거나 허가된 이상으로 과도하게 사용하면서 전봇대가 지저분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단순히 미관상 보기 안 좋은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주민의 생활 안전에도 위협이 된다. 전선 무게로 전신주가 기울어 보행자에게 위험할 수 있고, 화재의 원인이 될 우려도 있다. 태풍 등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더 큰 피해를 낳기도 한다.
특히, 통신사가 무단으로 사용하는 전신주는 대부분 관리되지 않는 통신 케이블인 경우가 많다.
여기서 '무단'이란 말 그대로 전신주 소유주인 한전의 정식 허가를 받지 않고 무질서하게 설치했다는 의미다. 빠른 개통을 위한 것으로 이유를 짐작해볼만 하다.
지난 5년간 통신사 배선전주 무단사용 현황에 따르면 LG유플러스 70만8000가닥, SK텔레콤 48만3000가닥, SK브로드밴드 96만가닥, KT 51만3000가닥 등 총 497만가닥을 무단사용하고 있던 것으로 집계됐다.
이로 인한 위약금은 1104억원으로, 피해 금액은 약 360억원으로 추정된다.
적발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통신선을 지중화할 때 비용을 누가 책임지느냐에 대해서도 책임 공방의 소지가 있다.
전기통신사업법은 통신선과 전력선 등 ‘공중케이블 정비의무(제35조의2)’에 관한 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정비계획의 시행에 소요되는 비용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설비등을 제공·이용하는 자가 공동으로 분담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제39조의6)을 살펴보면 전기통신사업자와 시설관리기관으로 하여금 정비계획의 시행에 소요되는 비용 중 자기소유의 설비 등에 대한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비용분담 비율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아 사업추진 상 이해관계에 따라 이견이 생길 수 있다.
반면, 전력케이블 지중화의 경우에는 전기사업법 주택법 등 관계법령에 따라 한전과 지자체가 사업비용을 절반씩 부담하고 있어 갈등의 요소가 없다.
단순히 네 것 내 것을 나누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민의 세금과 안전이 연관된 만큼 공정한 법 체계와 지중화 사업 진행이 필요하다.
만화책을 좋아하던 친구는 커서 웹툰 작가가 됐다. 어릴 적 일을 떠올리며 가끔씩 그 친구의 웹툰을 유료 결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