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영화, 연극, 뮤지컬, 웹툰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만 소비하기에는 뭔가 부족함을 느낄 때가 없던가요?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다양한 경제적, 사회적 읽을거리가 더해진다면 훨씬 더 재밌을 지 모릅니다. ‘일타쌍피 스토리노믹스’는 이야기에 플러스 알파를 더하는 경제인문학 콘텐츠입니다.
영화 콘택트(1997)와 오컴의 면도날
“우주에서 우리 둘 뿐이라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겠지”
외계인이 있을까, 라는 질문에 이만한 답변이 있을까. 이 답변은 영화 <콘택트>에서 나왔다. 우주에 푹 빠져 있는 9세 꼬마숙녀 엘리가 잠들기 전 “다른 행성에도 누가 살까요”라고 묻자 아빠는 인자한 표정으로 이렇게 답한다.
1997년 개봉한 <콘택트>는 <백투더 퓨처> <포레스트 검프> <캐스트 어웨이> 등을 연출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작품이다. 개봉된지 30년가까이 흘렀지만 지금도 우주를 소재로한 SF영화를 얘기할 때면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영화의 원작은 천체물리학자이자 작가인 칼 세이건의 동명 소설이다.

밤마다 미지의 상대와 교신을 기다리며 단파 방송에 귀기울이는 소녀, 엘리가 있다. 하지만 소형 송수신기로는 한계가 있다. 엘리가 중얼거린다. “안테나가 더 커야겠어”. 더 먼 곳에 있는 상대와 대화를 하기 위해 그녀가 택한 직업은 천체물리학자. 그녀는 외계 어딘가에 지적생명체가 있다고 믿고 SETI 프로젝트에 매진한다. 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란 외계 지적 생명체가 있다면 전파를 사용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우주에서 오는 전파를 수신해 분석해 외계인의 존재를 찾는 프로젝트다.
하지만 공상과학같은 이 발상은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연구비 지원이 중단된다. 엘리는 대기업인 해든인더스트리로부터 간신히 연구비 지원을 받지만 성과는 없다. 함께하던 동료 연구원마저 이제 그만하자고 할 때 베가성(직녀성)으로부터 신호가 탐지된다.
해독결과 인공적으로 보내온 신호라는 것이 밝혀지고, 정부도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한다. 외계에서 보내 온 신호를 분석해보니 기계장치의 설계도다. 알고보니 이는 행성간 워프 게이트를 통해 이동이 가능한 캡슐. 인류는 미지의 지적생명체를 만나기 위한 대표를 보내기로 한다. 기준은 인류의 표준이 되는 사람이다. 그 대표, 누가 될까?
우여곡절 끝에 낙첨된 사람은 엘리다. 엘리는 몇개의 웜홀을 통과한 뒤 베가성에 이르고, 마침내 외계인을 만난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외계인의 모습은 아니다. 엘리의 무의식 속 아름답게 남아있는 플로리다 펜사콜라의 해안가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마침내 돌아온 엘리. 하지만 캡슐안에 설치해놓은 소형카메라에는 아무것도 녹화가 돼 있지 않다. 엘리는 18시간 동안 우주여행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외부에서 볼때는 그저 캡슐이 바다로 떨어지는 찰나에 불과했다. 막대한 돈이 들어간 외계여행 프로젝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미 의회 청문회가 열린다. 엘리는 자신의 말이 진실이라고 주장하지만 근거가 없다.

청문회 의장인 키츠는 말한다. “어떤게 더 말이될까요? 외계인으로부터 메시지가 와서 마법의 기계를 타고 은하계의 중심에 갔다가 아버지와 윈드서핑을 한 후 1초도 안돼 증거하나 없이 집으로 돌아온 것? 아니면 당신의 경험은 해든의 마지막 퍼포먼스에 자신도 모르게 출연한 결과였다는 것?” 그러면서 결론 짓는다. “해든이 우리를 갖고 논겁니다.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화려하고 비용이 많이들고 정교한 사기극이었다는 겁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에도 영향을 미쳤다
키츠가 이같은 결론을 내리데 적용한 논리는 ‘오컴의 면도날’이다. 오컴의 면도날이란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가장 단순한 설명이 답이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단하나의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먼우주에 있는 외계인을 만났다고 주장하려면 복잡한 설명해야 하지만, 정신이 혼미한 상황에서 환각을 봤다고 말하면 설명이 매우 쉬워진다.
오컴의 면도날은 14세기 영국의 오컴 지방에 산 윌리엄(William of Ockham)이라는 철학자겸 수도사가 제안한 철학적 접근법이다. 오컴은 “어떤 것을 설명함에 있어서 불필요한 가정을 하지 마라”고 주장했다. 가정을 늘리면 늘릴 수록 틀릴 확률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지각을 했는데 “늦게 일어났다”와 “외국인 무리들이 길을 물었고, 그들에게 길을 목적지까지 안내해주느라 늦었다”라고 한다면 “늦게 일어났다”가 답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기꾼은 말이 많다.
이같은 철학적 접근법은 마치 불필요한 가정과 가설을 면도날로 잘라버리는 것과 같다는 뜻에서 ‘오컴의 면도날’이라고 부른다. 오컴의 면도날은 경제성의 원리, 단순성의 원리라고도 부른다.
오컴의 면도날은 이후 과학적 사고에 확장돼 적용됐다.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같은 종류의 자연현상을 설명함에 있어서 가능하다면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지상계와 천상계를 다르게 봤다. 하지만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이유도,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이유도 하나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며 만유인력의 법칙을 제시했다.

경제이론의 기본 원리인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가 오캄의 면도날의 경제학 버전으로 볼 수 있다. 세테리스 파리부스란 ‘모든 조건이 같다면’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현실의 복잡성을 무시하고 경제이론을 단순화시킨다. 즉 ‘수요가 늘면 가격이 오른다’는 수요공급법칙은 소득수준, 취향, 대체제, 정부개입, 통화량, 국제무역 등의 변수를 모두 배제했을 때 적용할 수 있다.
경제이론이 잘 맞지 않는 이유는
금리를 올리면 물가가 잡힌다거나 고소득층의 소비하면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는 낙수효과도 여러 변수들이 있다면 빗나기 쉽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렸는데, 물가는 계속 오르고 경기만 나빠지는 스테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고소득층 소비가 늘어나도 양극화만 심해지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이때문이다.
오컴의 면도날은 정보가 제한된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만약 충분한 정보가 주어졌다면 쓰기 어렵다. 또 제거된 가설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면도날로 가설을 쳐내는 것은 진리일 확률을 높여준 것에 불과하다.
청문회의장인 키츠는 ‘오컴의 면도날’을 들며 엘리가 “환각에 빠진 것에 불과하다”고 결론내린다. 하지만 엘리는 “나는 경험했지만, 증명할 수는 없다. 설명할 수도 없다. 그러나 내가 인간으로서, 나라는 존재로서 그것은 진짜였다”며 자신의 생각을 꺾지 않는다. 오컴의 면도날이 절대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반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때론 증명할 수 없더라도 사실인 것들이 있다. 예컨대 신의 존재를 믿으면서도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고,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을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어렵다. 오캄의 면도날을 존중하면서도, 숭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